日정권교체 계기로 美日관계 조정기 맞나

  • 입력 2009년 9월 1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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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등한 미일관계’를 내세운 일본 민주당 정권의 출범을 앞두고 미국과 일본 사이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인도양 급유지원, 핵 밀약, 주일미군 재편 등 현안에 대해 서로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양국 정부의 외교 탐색전이 시작된 가운데 이달 말 열릴 미일 정상회담의 결과가 주목된다.》

“핵밀약 규명” 목소리 키운 日

美핵무기 日 진입에 제동 걸어
공약이행-현실외교 ‘줄타기’

일본 민주당 정권은 출범하기 전부터 미일관계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다. ‘대등한 미일관계’를 내세우며 “할말은 하겠다”고 공언해온 민주당으로선 자민당 정권과 차별되는 대미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고 있고 미국은 이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다.

민주당의 방침은 미국 정부의 기대와는 분명히 거리가 있다. 16일 총리에 취임하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는 10일 ‘미일 핵 밀약’에 대해 “여러 의혹이 있어 진상을 밝히고 싶다”며 “결과를 국민에게 알리겠다”고 말했다. 핵 밀약은 양국 정부가 1960년 핵을 탑재한 미 함정과 항공기의 일본 내 진입이 가능하도록 비밀리에 합의했다는 것으로, 일본 정부는 비핵 3원칙을 위반하는 밀약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다. 일본정부가 이를 공식 조사하게 되면 미일 간에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

인도양에서의 해상자위대 급유지원활동도 기한이 끝나는 내년 1월부터는 활동을 중단할 방침이다. 미국이 활동 연장에 집착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민주당은 9일 타결된 연립정권 정책합의에서 이 방침을 재확인했다. 양국 정부가 이미 합의한 주일미군 재편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주둔비용이나 오키나와(沖繩) 미군비행장 이전문제 등의 수정을 원하고 있다. 민주당이 요구하는 주일미군 지위협정 수정도 미일동맹에 미묘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요인이다.

하토야마 대표는 23, 24일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어서 되도록이면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하지만, 연립정권 파트너인 사민당이 강경한 어조로 등을 떼밀고 있어 곤혹스러운 처지다. 하토야마 대표는 10일 오전 기자들로부터 ‘인도양 급유활동을 계속해 달라는 미국 요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우리는 요청받은 바 없다”며 서둘러 자리를 뜨기도 했다. 자신의 정치철학에 대해 미국 일각에서 ‘반미주의’라는 지적까지 나온 마당이어서 언행에 더욱 조심을 하는 모습이었다.

민주당은 총선 공약집에서 기존의 대미외교 방침 가운데 강경한 표현을 완화하는 등 현실노선으로 한 발짝 이동하긴 했지만, 아직도 미국과는 의견차가 있다. 그렇다고 국민에게 수차례 공언해온 방침을 또다시 수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달 말 오바마 대통령과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나올까봐 걱정이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이해-인내 필요” 톤 낮추는 美

주일미군문제 등 예민한 반응
“잡음엔 둔감하게 대응” 지적도

“일본의 정권교체로 미일 관계가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양국 간에 존재하는 많은 이슈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해야 하며, 인내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지난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미나에서 한 이 발언은 미일 관계를 바라보는 워싱턴의 시각을 잘 반영한다. 총론에선 긴밀한 동맹이 계속 유지되지만 각론에선 상당한 조정기를 거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다만 한미동맹이 노무현 정부 때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감정적 상처를 주면서 몸살을 앓은 것과 달리 미일관계는 더 실무적이고 차분한 조정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은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 주도의 글로벌 테러대책에 적극 참여해온 자민당 정부의 정책 기조가 새 정부로 계승되는 과정에서 마찰음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당장 10일 일본 민주당 내에서 미사일방어(MD) 시스템 예산 감축론이 제기되자 미 관리들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앞서 9일 제프 모렐 국방부 대변인은 인도양에서 다국적군 함대에 급유지원 활동을 하는 해상자위대의 내년 1월 철수 방침을 재고해 달라고 촉구했다.

국무부와 국방부는 또 조지 W 부시 행정부 말기에 자민당 정권과 합의한 오키나와(沖繩) 현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해 일본 총선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재협상할 의사가 없다”고 미리 못을 박았다. 양국은 후텐마 미군기지를 오키나와의 한적한 지역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으나 일본의 새 정부가 일본 밖 완전 철수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요구를 등에 업고 다른 말을 꺼낼 것을 우려한 것이다. 미국은 또 일본 정부가 28억 달러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오키나와에서 해병대원 8000명과 가족들을 2014년까지 괌으로 이전 배치하기로 합의한 것도 “변함없이 유효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쇠고기 수입 문제도 더 큰 마찰음이 예상된다. 미국육류수출협회(USMEF)는 지난주 “일본의 새 집권당에는 쇠고기 수입 확대에 반대하고 나설 강경파들이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정권초기 일본 민주당 강경파가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있지만 미국은 일본 내에서 완전한 정책조율 없이 흘러나오는 잡음들에 둔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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