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작품으로” 얼굴 없는 작가들

  • 입력 2009년 8월 31일 02시 57분


일본 북부 산악지역에서 매일 머리를 삭발하며 창작의 각오를 다진다는 마루야마 겐지, 프랑스 남부의 한 오두막집에 혼자 살며 일체의 언론 노출,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는 ‘향수’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 ‘소통’이 화두가 되는 시대에도 문단에는 은둔형 작가들이 있어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인터뷰나 독자와의 만남도 고사하고 창작에만 몰두하기도 하고 뛰어난 작품을 발표한 뒤 종적을 감추기도 한다. 국내에도 작품 외에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은둔 작가들을 찾아볼 수 있다.

SF작가 듀나, 출판사도 신상 몰라
이영도 씨는 마산 칩거 창작 몰두
절필선언 백민석-佛유학 송대방 씨 등
활발히 활동하다 돌연 ‘잠수’하기도

○ 미스터리형

사진을 전혀 공개하지 않고 대면 인터뷰도 한 적이 없는 작가들, 책을 낸 출판사의 편집자조차 만나본 적이 없는 작가가 있다. 1990년대부터 SF 단편소설, 영화평 등을 발표하며 활동해 온 듀나는 애초부터 신비주의로 일관했다.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현재 계간 ‘자음과모음’에 장편소설 ‘제저벨-시드니’를 연재하지만 실명, 나이, 학력 등은 알려진 게 없다. e메일로는 인터뷰에 응하지만 민감한 질문은 답변하지 않거나 얼버무린다.

직접 만나본 이들이 없다 보니 3인 공동 창작설, 사촌남매설 등 소문이 떠돈다. 자음과모음 정은영 주간은 “편집자도 e메일로만 일한다. 고료가 입금되는 계좌를 보면 이름은 ‘이영수’(38·여)이고 주소는 경기의 한 도시로 돼 있지만 본인인지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는 PC통신 시절 익명으로 활동하던 게 책 출간 이후에도 이어졌다는 분석부터 몸이 불편한 것이란 설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 히키코모리(외톨이)형

작품 외의 대외활동이나 문단모임을 즐기지 않아 은둔을 택한 작가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1998년 ‘드래곤라자’로 한국 판타지소설계를 평정한 이영도 작가(37)를 들 수 있다. 경남 마산에 칩거하며 창작활동에 전념하는 이 작가는 대면, 전화 인터뷰를 기피한다. 응한다 해도 ‘글쎄요’ ‘아니요’ 등 극도의 단답형으로 일관한다. e메일로 소통하는 편이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다.

“작품이 아닌 작가를 내세우는 걸 워낙 꺼린다. 독자와의 만남을 쑥스러워하고 편집자들의 방문도 한사코 거절한다. 편집자들 사이에서는 차기작을 발표하지 않고 있는 게 서울로 신작 홍보하러 오기 싫어서(?)란 의견이 오갈 정도다.”(황금가지 김준혁 부장)

‘키메라의 아침’ ‘조립식 보리수나무’ 등을 펴낸 조하형 작가(39)도 은둔벽으로 ‘얼굴 없는 작가’가 됐다. 2002년 본보 신춘문예 영화평론으로 등단한 그는 개인사정을 이유로 시상식에 불참했다. 2004년 계간지 ‘문학 판’에 소설 ‘키메라의 아침’을 발표하고 2008년 한 일간지 문학상 본심 후보에 올랐을 때도 사진 제공, 약력 공개를 거부하고 e메일로만 짧게 인터뷰했다. 담당 편집자와도 e메일로만 일한다. 문학과지성사 유희경 씨는 “부산에서 지내는데 기질상 글 쓰는 것 외 다른 모임이나 교류를 원래부터 즐기지 않는다. 이인성 선생 외엔 동료작가들과의 교류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 잠수형

활발히 활동하다 절필하거나 해외로 나간 뒤 종적을 감춘 작가들도 있다. 독자뿐 아니라 문단에서도 근황을 가장 궁금해하는 인물은 백민석 작가(38). ‘내가 사랑한 캔디’ ‘목화밭 엽기전’ 등 충격적인 언어, 기괴한 상상력으로 1990년대 주목받는 작가였지만 2003년 SF소설 ‘러셔’ 이후 절필 선언을 했다. 민음사 장은수 대표는 “기발하고 낯선 작품에 대한 평단 일부의 거부감과 비판, 문단에 대한 실망감 등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충남 서산에서 은거 중인데 동료 작가들과도 연락이 잘 닿지 않고 차기작도 기약이 없다.

서양미술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추리소설 ‘헤르메스의 기둥’으로 1996년 문단에 등장했던 송대방 작가(40) 역시 근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하는 송 씨는 현재 프랑스 유학 중이다. 문학동네 조연주 차장은 “그곳에서도 외부 활동 없이 연구실에만 머무는 듯하다. ‘헤르메스의 기둥’ 개정판을 내려고 했을 때 연락이 잘 안돼 어머니를 통했는데, 우편이 오가는 데 몇 개월이 걸렸다. 학위에 전념하느라 시간이 없어서일 뿐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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