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가 간다] ‘무적(無敵)무예’ 택견 체험

  • 입력 2009년 7월 8일 0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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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찬 기합에 ‘막싸움’ 발길질이라니…

싸움 잘하는 친구에게 객기 부리다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아 본 사람은 안다. 필살의 ‘단 한 방’에 대한 갈망을. 하지만, 일반인에게 그것은 그네를 타고 바라보는 하늘과 같다. 닿으려야, 도저히 닿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강한 자가 되고 싶은 로망은, 창작의 세계에서 무수한 무술영웅들로 표현되어왔다.

될 수 없다면, 엿보고라도 싶은 것이 사람의 심정. “일반인과의 싸움이라면, 3초 만에 승부는 끝”이라는 올림픽 복싱메달리스트도 만나봤고, “쓰레받기 하나로 병을 든 불량배들을 일망타진 했다”는 검도인과도 얘기를 나눴다.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강하기 위해서는 부드러워야 한다.’ 그 때마다 떠오르는 무예가 있었다. 마치 취권처럼 흐느적흐느적 거리다 날렵하게 발을 뻗는 택견. 굼실거리는 동작만이 이미지로 남아있을 뿐, 그 실체와 파괴력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했다. 세계유일의 9단 이용복(61) 대한택견연맹 상임부회장의 일일문하생이 되기 위해 경기도 구리에 위치한 대한택견연맹 중앙전수관을 찾았다.

○격파? 망치로 치면 누구나 잘하지

상대의 급소를 노리는 비기(秘技) 하나 쯤은 배워갈 심산이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첫 마디에서부터 기대감은 어그러졌다. “택견은 타격을 주는 무예가 아닙니다.” 1시간에 걸친 이론 강의는 ‘택견의 정신’을 설명하는데 집중됐다. 20년 전 만해도 택견을 개(犬)의 일종으로 생각해, 강아지 분양을 문의하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로 택견은 생소했다. 지금이야 택견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여전히 오해가 많다.

“저는 수 십 년간 수련을 했습니다. 그래도 기자님이 저보다 더 격파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요. 뭔지 아십니까?” 역시 고수들은 선문답을 즐긴다. 잠시 망설이자, 이 부회장의 답변이 이어졌다. “저는 맨손으로 하고, 기자님은 망치로 내려치면 되지요. 하하하.”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이 이야기의 진의는 무엇일까. 정말, 망치로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이 부회장은 “‘맨몸무술의 신비성’을 깨야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이 간단한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석기시대부터, 이미 맨몸무술은 무기를 당할 수 없게 됐다. 하물며, 강력한 화기가 발명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맨몸무술의 살상력은 논의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총알도 피할 수 있다’던, 중국 청대 말의 의화단 수 십 만 명이 구경화기를 앞세운 2000여명의 유럽군대에게 궤멸당한 것이 단적이 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무예야 말로 무적(無敵)’이라는 식의 선전용 주장들이 유통되고 있다. 싸움을 잘 하고 싶다면? 답은 간단하다. 이 부회장은 “택견을 배울 것이 아니라, 무기를 들면 된다”며 웃었다. 단, 민형사상의 책임은 질 각오를 해야 한다. 비로소 구름 위 판타지의 세계에서 벗어나 땅으로 내려왔다.

●굼실·능청, 한바탕 춤사위

손바닥을 한 번 펴보세요. “팍.” 이 부회장의 주먹이 강타. “이것은 태권도식입니다. 힘을 순간적으로 집중시키는 것이지요.” 다시 한 번 손바닥을 폈다. “퍽.” 반면, 택견은 상대적으로 주먹과 손바닥이 닿는 시간이 길다. 아프지는 않지만, 뒤로 넘어가는 느낌. “일단, 이 원리만 알면 됩니다. 상대방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밀어내는 것입니다.”

본격실습 돌입. 제3대 천하택견명인에 빛나는 김상민(37) 6단이 지도를 자청했다. 천하택견명인전은 택견의 최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대회다. 시범조교는 이시혁(26) 4단과 손재찬(19) 3단.

택견은 품밟기라고 불리는 보법(步法)을 익히는데서부터 출발한다. 품밟기는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가며 앞으로 내딛으며, 체중을 옮기는 동작. 이 때 앞으로 내민 발 쪽 무릎을 가볍게 구부리는 동작을 ‘굼실’이라고 하고, 그 발을 다시 뒤로 빼면서 몸을 활처럼 살짝 젖히는 동작을 ‘능청’이라고 한다. 굼실과 능청 때문에 품밟기는 마치 춤을 추는 동작을 연상시킨다.

“춤은 좀 추시는데요. 무용 하신 분들은 택견을 더 빨리 배우시기도 합니다.” 틀어놓지도 않은 음악이 들리는 듯. 김상민 6단의 칭찬에 흥은 더 고조됐다.

○때리는 게 아니라니까요!

약육강식의 격투를 벗어나 시퍼런 무기를 내려놓고 겨루게 됐다는 것은 ‘제한성’과 ‘규칙성’의 탄생을 말한다. 놀이 또는 경기를 하다가 상해를 당하면, 공동체로서는 큰 손실. 그래서 이 부회장은 “맨손무술은 상대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했다. 택견은 그 본질에 충실하다. 공격시 상대의 급소를 피하고, 대신 이마나 복장, 장딴지, 어깨 등 위험성이 적은 곳을 목표로 삼는다. 주먹이나 발모서리를 이용한 타격도 금지.

상대를 배려하는 이러한 공격기법을 ‘는지르기’라고 부른다. ‘는지르기’는 ‘풀어지다, 느리다’는 뜻을 가진 ‘느’와 ‘지르기의 합성어. 똑같은 발차기라도 굼실과 능청에 의한 동작이 아닌 단순 허리회전 동작은 실격이다.

물론 경기장을 떠난 경우, 위급 상황에서는 실격동작이 나오기도 한다. 김상민 6단의 부인인 부천 중동 전수관 임미영(37) 관장은 몇 년 전 좀도둑을 잡아, 경찰서에 인계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때는 굼실과 능청을 통한 배려는 없었다.

김상민 6단이 특별 전수한 기술은 ‘명치기.’ 발바닥을 상대의 명치에 갖다댄 뒤, 발목을 이용해 퉁기듯 밀치는 기술이다. “앗, 때리는 게 아니라니까요.” 택견은 상대를 밀어 넘어뜨리거나 얼굴 공격을 성공시키면 승리. 하지만 타격의 타성에 젖어서인지, 상대를 밀치는 동작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너그러운 마음도 한두 번. 김상민 6단의 화는 쌓여만 갔다.

○상대를 대접하는 무예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대접’자세가 절정. 대접은 상대가 공격하기 쉽도록 한 쪽 발을 내어주는 동작이다. 대접은 품밟기 동작과 동시에 상호간에 이루어진다. 레슬링으로 치자면 서로가 동시에 파테르 자세를 취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왜 자기 것은 내어주기가 싫은 지…. 왼발을 내주었다가 무릎 공격을 당해 벌렁 나자빠지기를 수차례. 슬그머니 왼발이 뒤로 향한다. “대접을 하셔야죠.” 김상민 6단의 불호령. 택견에서는 ‘대접’과 ‘는지르기’ 이외의 기법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둔다. 마지막 관문은 김상민 6단과의 겨루기. 사실상 입식타격과 택견과의 대결이다. 때리려고(?) 들어가면 순식간에 바닥에 고꾸라지고, 창피한 마음에 “익크, 에이크” 택견 특유의 기합소리만 커져간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움직이다가도 넘어지는 것은 나도 모르게 순식간이거든요. 그래서 지고 나면 너털웃음만 나와요.” 가쁜 숨을 내쉬는 기자에게 김상민 6단이 손을 내밀었다.

이용복 부회장은 “택견이야말로 절제된 경쟁을 통해 상생의 원리를 가르친다”고 했다. 택견에서 상대란,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동반자. 경쟁의 목표가 상대를 없애는 것이 아니듯, 결국 무기를 버린 맨손무술의 목적도 일사즉타는 될 수 없다. ‘평화지향적인 무술’이라는 말이 형용모순이 아님을, 택견은 역설하고 있었다.

구리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사진 ㅣ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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