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한판 붙어볼까”…‘게임+운동’ 운동방이 뜬다

  • 입력 2009년 6월 19일 02시 56분


좁은 방 안에서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땀을 흘리는 3년차 커플 양경철(22·대학생) 성새미 씨(22·대학생). 둘은 사이좋게 웃으며 서로에게 펀치를 날린다. 3라운드까지 가는 혈투 끝에 승리는 성 씨에게 돌아간다. 승부에 진 양 씨는 한 번 더 겨루고 싶어하지만 여자친구가 녹초가 된 이유로 좀 더 쉬운 종목으로 게임을 바꾼다.

둘이 맞붙은 곳은 홍익대 앞에 있는 카페 ‘위(We)’로 닌텐도 게임기 ‘위(Wii)’를 이용해 여러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운동방’이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이곳은 주말이나 평일 저녁엔 줄을 서서 30분 정도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을 만큼 인기가 많다. 김종회 We 대표는 멀리서 운동방 원정을 오는 사람들을 위해 올해 3월 건대 앞에 2호점을 열었다.

○ 노래방, 게임방 이어 이젠 운동방

운동방은 운동을 하며 여가를 보내는 곳이다. 실내탁구장이나 볼링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게임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2∼4명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만 있으면 운동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돈과 시간만 있으면 몇 시간이든 죽치고 앉아 할 수 있는 게임방과도 다르다. 운동방에서는 체력이 다하면 더는 게임을 즐길 수 없다.

김 대표는 “대학가 앞에 있어서 20대 초중반 고객이 주로 오지만 주말에는 가족 단위 이용객도 자주 와요. 게임이지만 2∼3시간 이상 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힘들기 때문이죠. 많이 움직여야 하는 종목을 고르면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워지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에어컨을 틀어 달라는 고객이 있을 정도예요”라고 설명했다.

운동방을 찾는 단골손님 중에는 여성 고객도 많다. 이들은 “게임이 아기자기하게 재미있고, 격렬하면서도 위험하지 않게 운동을 즐길 수 있다”고 입을 모으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같이 온 사람과 서로 눈치를 보지 않고 놀 수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게임이나 운동은 대개 자주 하는 사람의 실력이 높은 경우가 많아 한쪽이 봐주지 않으면 승부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운동은 신체적 능력도 실력을 좌우하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은 못하는 사람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하고 못하는 사람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 일쑤다.

하지만 운동방에서는 정교하지 않은 동작으로도 게임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운동능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남자친구와 운동방을 찾은 성 씨는 “야구나 볼링 같은 위 게임은 팔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공을 던질 수 있어 누가 이길지 모른다”며 “그래서인지 남자친구가 이기고 나서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 ‘욱’ 하기도 하지만 내심 귀여운 것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 게임+운동이냐, 운동+게임이냐

게임에 운동을 접목시킨 게 운동방이라면 ‘엑서게임(exergame)’방은 운동에 게임의 요소를 가미한 곳. 엑서게임은 운동(exercise)과 게임(game)을 조합한 신조어다. 엑서게임의 특징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유산소 운동에 게임을 접목해 오랜 시간 움직이도록 돕는다는 점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키튼코리아’는 엑서게임 운동기구를 활용해 여섯 살 이상 아이들의 운동능력을 길러준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운동기구는 ‘라이트스페이스’로 남녀와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라이트스페이스는 가로세로 3m의 정사각형 발판에 빛을 내는 타일들이 깔려 있다. 타일에는 압력센서가 있어 사람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백승현 키튼코리아 트레이너는 “발밑으로 다가오는 공을 피하는 피구 게임이 규칙이 쉬워 가장 자주 한다”며 “10∼20분 게임을 하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상당히 격렬한 유산소 운동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녀의 강펀치가 내 가슴에 꽂혔다

경쟁심을 자극해 운동을 지속하게 하는 운동기구도 있다. ‘게임바이크’는 일본 소니가 만든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과 연동하는 자전거형 운동기구다. 운동기구가 일종의 게임 조작장치가 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 게임바이크로 자동차 경주를 한다면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속도가 자동차 속도가 되고 핸들로 방향을 조절하게 된다. 페달을 천천히 굴리면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서는 끝까지 달려야 한다. 이 운동기구는 초등학교 남학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게임바이크는 플레이스테이션의 특성상 이용자끼리 겨룰 수 있는 ‘멀티플레이 모드’로 연결할 수 있지만 키튼코리아에서는 컴퓨터와 일대일로 맞붙는 ‘싱글플레이 모드’만 운영한다. 게임이 갖는 중독성과 승부욕 때문이다.

“성인과 달리 어린이는 감정 절제가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승부욕이 강한 어린이는 운동기구에서 안 내려오려고 합니다. 게임에만 집중해 운동을 잊기 때문이죠. 이렇게 되면 자신의 신체능력보다 과도한 운동을 하게 돼 효과가 오히려 떨어질 수 있습니다. 유산소 운동을 재밌게 하려던 시도가 부작용을 낳는 것이에요.”(백 트레이너)

엑서게임을 게임이 아닌 운동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바로 백승현 씨 같은 엑서게임 트레이너의 역할이다. 엑서게임 트레이너는 미국 ‘엑서게임스(Xergames)’사가 발급하는 자격증이 필요한다. 이를 받으려면 엑서게임 운동기구의 조작법과 안전수칙은 물론 사용자의 중독성을 막기 위한 방법도 익혀야 한다. 게임을 고를 때 너무 실제와 비슷하거나 스릴을 느끼는 것을 배제하는 것도 중독성을 최소화하는 방법 중 하나다.

○ 성인도 즐길 수 있는 게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엑스알케이드’에는 성인용 엑서게임이 있다. 게임바이크와 비슷한 이곳의 ‘다운바이크’는 사용자끼리 대결을 할 수 있도록 2인용으로 구성됐다.

사용자들은 자신의 운동능력에 맞도록 레이싱 경기를 벌일 코스와 랩(바퀴) 수를 설정할 수 있다. 대개 4∼6바퀴 돌도록 설정된 코스를 선택하지만 긴 구간을 10바퀴 이상 도는 코스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이진우 엑스알케이드 트레이너는 “남자끼리 온 사용자는 승부욕에 불타 장거리 코스를 선택하지만 8바퀴가 넘어가면 대개 허벅다리에 극심한 고통을 맛보게 돼 서로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속도를 늦추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운동 능력에 차이가 나는 사람끼리 겨룰 때도 방법이 있다. 김기연 씨(22·대학생)는 “아무래도 남자들의 근력과 지구력이 좋기 마련”이라며 “자동차를 고를 때 남자는 가장 나쁜 차를 고르고 여자는 속도가 빠른 모델을 고르면 비슷한 실력으로 게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로 큰 차이가 없는 균형감각을 이용한 ‘스노보드’ 게임을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김 씨는 “스노보드는 다리 근육을 예쁘게 보정하는 효과가 커 여자들 사이에 인기”라며 “게임이 재미있다 보니 헬스장에서 시간, 칼로리, 거리 같은 숫자만 쳐다보며 하는 것보다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성인 사용자가 많은 엑스알케이드의 트레이너는 사용자의 중독성을 걱정하지 않는다. 대부분 다리운동, 팔운동, 전신운동이 되는 각 운동기구를 골고루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 기구 뒤에 줄서서 기다리는 일도 거의 없다. 다른 게임을 한판 하고 오면 대개 자리가 나기 마련이다. 이 트레이너는 “1인당 요금은 10분에 1100원으로 싸지 않은 편이지만 ‘주말에 영화 한편 볼 금액으로 신나게 운동하고 간다’는 생각으로 찾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재미+건강 꿩먹고 알먹고 연인-가족 부담없이 즐겨
어린이들 신체발달 돕는 엑서게임방도 발길 북적

○ 달리기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운동방도

국내 기업 프레볼라는 최근 100m에서 42.195km에 이르는 마라톤까지 다양한 달리기 게임을 할 수 있는 트레드밀 운동기구를 개발했다. 이 기구는 사람이 뛰는 속도에 맞게 트레드밀이 도는 속도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운동기구에 달린 레이저 센서가 사람이 앞이나 뒤로 가는 정도를 1mm 단위로 측정해 속도를 제어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까워지면 속도가 올라가고 멀어지면 줄어드는 식이다. 그래서 기존 트레드밀처럼 손으로 버튼을 눌러 속도를 맞추지 않아도 된다.

또 이 운동기구는 네트워크로 연결할 수 있어 사람들끼리 달리기 경주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터넷에 연결하면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배틀넷’처럼 잘 모르는 사람과도 경기를 할 수 있다.

범효진 프레볼라 대표는 “예전에도 ‘달림방’이란 곳이 있었지만 게임이란 요소 없이 달리기만 하다 가는 곳이라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며 “달리기의 특성상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찜질방과 연계한 운동방부터 단계적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 엑서게임 트레이너가 추천하는 운동법

1. 게임이라도 운동은 운동.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2. 워밍업은 ‘라이트스페이스’. 자신의 발밑을 따라오는 바닥 불빛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심박수가 빨라지고 심폐기능이 활성화된다.

3. ‘게임바이크’나 ‘다운바이크’로 유산소 운동. 개인의 신체적 역량에 따라 게임 난도를 설정할 수 있다. 너무 승부에만 집착한 나머지 무릎 위 근육에 극심한 고통이 올 때까지 페달을 밟으면 다칠 수 있으니 주의. 코스별로 전력질주와 천천히 밟는 휴식을 번갈아 하면 저절로 ‘인터벌 트레이닝’이 돼 지방 감소와 근지구력 강화에 효과가 좋다.

4. 닌텐도 Wii를 이용한 간단한 게임으로 근육에 약간의 휴식을 준다. 하체 유산소 운동을 한 직후라면 권투 게임을 하며 하체는 가볍게, 상체는 빠르게 움직이면 균형을 맞출 수 있다.

5. 가벼운 휴식이 끝난 뒤에는 근력을 키우는 전신 운동이 좋다. 짚고 올라갈 수 있는 모형 돌들이 일정한 속도로 내려오는 암벽등반 운동기구 ‘트레드월(treadwall)’은 5분만 해도 땀이 흠뻑 난다. 안전을 위해 운동기구를 조작할 수 있는 엑서게임 트레이너가 필요하다. 암벽등반이 어렵다면 세 방향 세 가지 높이의 쿠션에 불이 들어오면 이를 가격하는 ‘격투형 운동기구’도 좋다. 높낮이에 상관없이 주먹과 발을 골고루 사용하면 전신 운동이 된다.

6. 마지막으로는 균형감각을 기를 수 있는 ‘스노보드’ 게임이 좋다. 발판에 서서 균형을 잡으며 스노보드를 조종하다 보면 심박수는 점점 줄어들며 근육에 약간의 긴장을 주기 때문에 정리 운동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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