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정열]조회수 조작이 ‘표현의 자유’인가

  • 입력 2009년 5월 25일 02시 51분


경찰이 지난해 5월 인터넷 포털사이트 토론방에 자신이 가르치는 학원 수강생들의 ID를 이용하여 여러 차례 정부를 비방하는 글을 올린 뒤 자동으로 조회 수가 늘어나도록 조작한 사람을 포털사이트에 대한 업무방해죄의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실을 놓고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 토론방, 나아가 포털 전체의 신뢰도에 손상을 주는 등 포털의 업무를 방해했으므로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 구체적 기술적인 장애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형법상의 업무방해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를 입건하면 결국 표현의 자유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조회 건수의 조작으로, 구체적인 다른 사정없이 사이트의 신뢰도 손상이라는 사유만으로도 업무방해가 있었다고 해야 하는지는 법원이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ID를 이용하여 글을 올린다거나 자동화된 방법으로 조회 수를 조작하는 일 자체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국가에서 국민의 의사 형성에 필수불가결한 자유권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의사를 외부로 표현하는 데서 나아가 다른 사람의 의견인 양 가장하거나 다수의 의견인 듯이 왜곡하는 일까지는 포함하지 않는다. 특히 사회적 정치적 쟁점을 인터넷 공간에서 논의하고 그 결과가 국민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우리 사회에서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여론 조작이나 왜곡은 국가에 의해서든, 국민에 의해서든 시민의 진정한 의사를 왜곡함으로써 오히려 민주주의 발전에 방해가 될 수 있다. 특히 조회 수 조작과 같은 여론 조작행위는 많은 누리꾼이 주목하는 의견인 듯이 여론을 호도함으로써 ‘사상의 자유시장(free marketplace of ideas)’이 허용하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다른 법익의 침해가 없는 한 인터넷 공간에서의 여론 조작이나 정보왜곡 행위 자체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이 사건처럼 문제의 본질과는 다른 범죄로 처벌하려고 하거나 인터넷 사업자 스스로가 여론의 조작이나 왜곡을 기술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인터넷 사업자의 기술적인 조치가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다. 특정 사안에 대한 무리한 형사처벌 시도는 항상 형평성 논란을 야기하고, 사업자 스스로의 기술적 조치 또한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가 사업자의 상업적 또는 자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인 권리를 기술적인 수단에 의해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다.

미국의 헌법학자이면서 크리에이티브 커먼스(Creative Commons)의 창시자인 로런스 레식 교수도 10년 전에 쓴 책에서 이미 사이버 공간에서는 인간의 행동을 제한하는 4가지 조건, 즉 법률 도덕 시장 물리적 구조 가운데 물리적 구조인 프로그램 코드가 인간의 행동을 제한하는 중요한 통제 수단이 될 것임을 예견하고 이에 대한 입법 행정 사법 차원의 대응이 필요함을 주장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인터넷 토론장이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누리꾼의 좀 더 책임 있는 자세와 함께 행위 자체의 위법 정도를 구체적으로 따져 법률로 제재의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사업자에 의한 기술 조치가 결과적으로 헌법이나 기타 법률에 보장된 이용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는지를 사전 및 사후에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최정열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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