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두 발로 만난 ‘검은 대륙’ 인류의 희망을 보다

  • 입력 2009년 5월 23일 02시 59분


◇아프리카 트렉/알렉상드르 푸생, 소냐 푸생 지음·백선희 옮김/568쪽·2만2000원·푸르메

《“레 초 아카이(어디 가세요)?” “오 차 카에 모코틀롱 카마오투(걸어서 모코틀롱에 갑니다).” “카마오투? 헬레 헬레, 레 카테체(걸어서요? 저런, 피곤하시겠어요).” 여행을 떠난 지 넉 달이 지난 어느 날. 부부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안에 있는 산악국가 레소토의 한 마을을 지날 때였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같은 질문을 던졌고, 두 사람은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어디로 가느냐” “왜 차를 타지 않느냐”는 질문은 여행을 시작한 뒤 수없이 받았던 질문이다.

알렉상드르와 소냐는 프랑스인 부부. 신혼 때인 2001년 1월 1일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최종 도착지는 이스라엘의 티베리아스 호수. 동아프리카 대지구대(大地溝帶)를 따라 아프리카를 남북으로 총 1만4000km 걷는 여행이었다.》

여행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아프리카의 현실을 체험하고 그것을 세상에 전하는 것. 또 하나는 동아프리카 대지구대에서 발견된 최초 인류의 흔적을 좇는 것이었다.

배낭 하나씩 메고 출발한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었다. 여행 둘째 날 길에서 만난 짐바브웨 출신 마이크 햄블렛은 선뜻 부부에게 아침을 제공했고, 그 다음 날 저녁에 찾은 집에선 흑인 노동자들이 공동침실에 부부의 잠자리를 마련해 줬다.

부부는 아스팔트길을, 또 끝없이 펼쳐진 해변을 걷고 또 걸었다. 빈민촌에서 밤을 보내기도 했다. 유리 파편, 고함 소리, 나태와 가난으로 얼룩진 곳. 하룻밤을 보낸 그들이 거리로 나오자 사람들이 사방에서 그들을 따랐다. 이곳 빈민촌에서 처음으로 같이 잠을 잔 백인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초원에서 한 가지 신기한 법칙을 발견했다. 날이 저물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알렉상드르는 “농부들은 늘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 중이냐고 물은 다음 우리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고 썼다.

부유한 백인에서부터 가난한 흑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부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프리카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을 했다는 릭이라는 백인 남자는 “아파르트헤이트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깜둥이들의 친구’라고 비난하고, 흑인들은 우리를 백인으로만 본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짐바브웨에선 굶주린 채 걷고 있는 행렬과 계속해서 마주쳤다. 남아공 국경을 향해 힘없이 걷는 그들은 짐바브웨의 가난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이었다. 말라위에선 에이즈가 만연한 아프리카의 현실을 확인했다. 구호단체 직원인 필립은 말라위 인구의 10%가 에이즈 환자이고, 에이즈에 걸린 국회의원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말라위의 실정을 들려줬다.

상세한 묘사에 능한 저자의 글 솜씨 덕분에 한 편의 그림이나 영화를 보듯 장면들이 그려진다.

“야생이 소리친다. 멀리서 사자는 여전히 자기 몫의 고기를 갈구했고, 하이에나들은 낄낄거리며 무질서함을 드러내 보였다. 귀뚜라미들은 숨죽인 밤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생명의 콘서트를 열고 있었다.”

부부의 눈을 통해 들여다본 아프리카의 풍경과 현실은 생생하다. 그 가운데서 가장 와닿는 것은 무엇보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다. 레소토의 한 마을에서 부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고개로 올라갔다가 다시 강으로 내려와 단층절벽을 지나갈 것”이라고 몸짓으로 설명했다. 사람들은 “다녀간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다는 대답에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어떻게 보지도 못한 풍경을 그리 잘 알죠. 그리고 이 구겨진 종이(지도)에서 어떻게 미래를 읽는 거죠?”

부부가 야영 도중 만난 ‘검은 어린왕자’에 대한 이야기에선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때 한 아이가 석양을 등에 지고 나오더니 우리를 향해 곧장 걸어왔다. 겁도, 망설임도 없이 그 아이는 우리가 밝히고 있는 모닥불의 원 속으로 들어오더니 말없이 우리에게 악수를 청하고는 불가에 앉았다. 그리고는 수수께끼처럼 미소를 지었다. 검은 어린왕자는 불 속의 나뭇가지를 정리하면서 계속 미소 띤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예정 루트를 3년 만에 완주한 부부는 총여정의 절반인 희망봉에서 킬리만자로 정상에 이르는 7000km의 여정을 이 책에 담았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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