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패러다임 바꾼 ‘스타크 사회학’

  • 입력 2009년 5월 21일 09시 42분


젊은이들 당구 큐대 놓고 PC방 몰려
‘놀면서 돈버는’ 프로게이머 선망 대상

최근엔 토종게임들이 더 각광
온라인게임 올 수출 10억달러
향후 10년 이끌 성장동력으로

11년 전 대학가 주변 PC방은 시끄러웠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당구장이냐 PC방이냐”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벌어졌다. 그러나 다툼은 점차 사라졌다. 이들은 ‘큐’ 대신 컴퓨터 마우스와 친해졌고 ‘스리쿠션’ 대신 ‘테란’ ‘저그’ ‘프로토스’의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해 초 공개된 블리자드의 PC게임 ‘스타크래프트’는 당구장 노래방 주점에 있던 청춘들을 PC방 컴퓨터 앞으로 불러 모았다. ‘본 게임’은 1999년부터였다. 온라인게임을 ‘산업’으로 인식한 정부는 2월 게임종합지원센터(현 한국콘텐츠진흥원)를 설립했다. 그해 말에는 한국통신프리텔(현 KTF)이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단인 ‘n016’을 결성했다. ‘전자오락’이 하나의 산업이 된 지 올해로 10년. 국내 온라인게임 산업은 10년간 여러 분야에서 한국 사회를 바꿔놓았다.

○ 한국을 바꾼 온라인 ‘르네상스’ 10년

2008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는 현재 3조3067억 원. 세계 온라인게임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34.5%로 2003년 이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스타크래프트로 시작된 국내 온라인게임 열풍은 1990년대 후반 정보기술(IT) 산업의 태동과 맞물린다. 특히 외환위기 당시 실직자들이 대거 PC방을 창업했던 시대적 배경도 있다. 서강대 게임교육원 이재홍 교수는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 같은 초창기 온라인게임들은 강한 이야기 구조 대신 짧은 시간에 화끈하게 끝낼 수 있는 그래픽 위주의 게임들이 많았고 이것이 ‘바쁜’ 한국인들에게 쾌감을 불러 일으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게임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변화였다. 당구장, 노래방 문화를 대체할 ‘PC방 문화’가 형성됐고, 프로게이머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직종으로 떠올랐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심지어 공군까지 프로게임단(현재 12개 게임단, 450여 명)을 만들며 ‘e스포츠’ 문화를 알렸다. 임요환으로 대표되는 ‘억대 연봉’ 프로 게이머가 우상으로 떠오르자 ‘명문대학→대기업’이라는 고전적인 한국 사회의 행복 코스를 거스르는 10대도 생겨났다. 이들은 온라인게임을 통해 “놀이가 곧 일이요, 일이 곧 놀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장하고 나섰다.

○ 레드오션을 바꿔야 할 새로운 10년

10년 전 온라인게임 열풍의 시작은 미국발(發) 스타크래프트였지만 이제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아이온’, 넥슨의 ‘카트라이더’, 그라바티의 ‘라그나로크’ 등 국내 토종 게임들이 주도하고 있다. 2002년 1억4000만 달러(약 1746억 원)에서 2009년 10억 달러(약 1조2400억 원)으로 7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10년이 된 현재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의 성장세는 2007년 26.1%→2008년 23%→2009년 20%로 둔화되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 유럽 등 신흥 온라인 경쟁국들이 세계 시장에 도전하고 있는 분위기다. 또 현란한 그래픽과 스케일 큰 다중접속온라인게임(MMORPG) 장르 등 흥행 위주의 게임 제작에 열중해 대안이 없는 ‘레드오션’이 돼 버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산업본부 서태건 본부장은 “앞으로 다가올 10년은 온라인과 비디오 등 ‘플랫폼’의 경계가 무너질 것”이라며 “이러한 변화를 잘 감지해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만드는 업체의 노력과 정부의 꾸준한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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