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은아]FT의 한식세계화 비판과 벤토 예찬

  • 입력 2009년 5월 20일 02시 58분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 17일자에는 ‘한식 세계화’와 ‘일본의 벤토(도시락)’에 대한 칼럼과 기사가 각각 실렸다.

식음료면에 실린 ‘벤토’ 기사는 아름다운 수식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이 점심 박스들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것을 먹는다는 것은 범죄였다.…나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내 슬픈 샌드위치를 깨물면서 준비하는 데 몇 시간이 걸렸을 놀라운 그것(벤토)을 일본 어린이들이 몇 분 만에 젓가락으로 파괴하는 것을 지켜봤다. 벤토 만들기는 요리인 동시에 수공예 같다.”

반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식을 8년 안에 세계 5위권으로 진입시키겠다는 한국 정부의 한식 세계화 계획을 다룬 칼럼은 비판적인 논조로 일관했다. 이 칼럼을 쓴 FT 서울통신원은 “한국 정부의 한식 세계화 정책이 ‘세계 음식 5위권 진입’이란 허무맹랑한 순위에 집착하고 있다”면서 “세계 음식 5위권이라는 주관적 개념을 누가 측정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수량화할 수 없는 대상을 수량화하려는’ 특이한 경향을 보이는 것은 한국의 서열화 교육에 그 뿌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인은 족벌주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험이 옳고 그름을 묻는 질문들로 정리되는 것을 선호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이 칼럼에서는 한국의 음식문화에 대한 필자의 몰이해와 편견도 여과 없이 묻어 나온다. 이 칼럼의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전 세계의 낙지들은 떨고 있어야 한다. 한국의 요리사들이 글로벌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이 거부감을 보이는 ‘산낙지’나 ‘보신탕’이 마치 한국 식문화의 대표인 것 같은 인상도 은연중에 내비쳤다.

세계적 권위지로 평가받는 FT가 문화의 상대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편협한 칼럼을 버젓이 싣는다는 점은 실망스럽다. 한식 세계화 운동의 목표는 한식이 프랑스 음식이나 중국 음식처럼 세계적 인지도 면에서 5대 음식 안에 들게끔 노력하겠다는 것이어서 일방적인 서열화와도 거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도 반성할 점이 있다. 처음부터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도 좋지만 화려한 선언에 몰입하면 해외 언론이나 외국인들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 음식처럼 문화적인 주제를 다룰 때는 “돌격! 고지를 향해” 같은 구호보다 좀 더 세련되고 간접적인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것도 재고해 볼 일이다. 민간의 ‘문화대사’를 충분히 활용하면서 정부는 뒤에서 섬세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조은아 산업부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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