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허용’ 총대 멘 서울대병원

  • 입력 2009년 5월 19일 02시 55분


“말기암 환자, 연명치료 받을지 사전에 선택”

21일 대법판결 영향 줄듯

서울대병원은 말기 암환자의 동의가 있다면 존엄사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서울대병원의 이 같은 방침은 21일 예정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존엄사 소송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서울대병원 의료윤리위원회(위원장 오병희 부원장)는 이날 “말기 암환자가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지에 관한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해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의사를 미리 밝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사전의료지시서에는 연명치료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치료를 받을 것인지를 말기 암환자 본인이 선택하도록 돼 있다. 또 환자가 이런 판단을 할 수 없는 경우 자신을 대신해 줄 특정인을 대리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사실상 말기 암환자 또는 특정 대리인이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할 경우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말기 암환자 치료를 맡고 있는 이 병원 혈액종양내과에서는 이달 15일부터 환자들에게 사전의료지시서 작성을 추천하고 있으며 단계적으로 적용을 확대한다는 것이 병원 측의 설명이다.

서울대병원은 기존에도 비공식적으로 연명치료 여부에 관한 동의서를 말기 암환자에게 받아왔다. 2007년 기준 이 병원에서 사망한 656명의 말기 암환자 중 436명은 가족들이 심폐소생술을 거부해 연명치료가 중단됐다. 반면 123명은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다가 사망했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현장 의사들이 현행법상으로는 보호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때그때 판단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했는데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며 “병원의 이번 조치는 서울대병원이 의료계를 대표해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말기 암환자 가운데 임종 전 2개월까지 중환자실을 이용한 경우가 30%, 인공호흡기를 사용한 경우가 24%, 투석을 시행한 경우가 9%로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진료현장에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환자 가족의 요청에 대해 “존엄사를 의료진이 결정할 수 없다”며 대법원이 판단해 달라고 상고한 바 있다. 환자 김모 씨(72)는 지난해 2월 이 병원에서 폐 조직검사를 받다 출혈로 인한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환자 가족들은 연명치료 중단 소송을 냈고 1심과 2심 재판부는 “환자의 존엄사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며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판결했다. 병원 측은 “존엄사에 대한 법적 기준과 사회적 합의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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