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노지현]美공립학교서 ‘웰 다잉’ 가르치는 이유는…

  • 입력 2009년 5월 19일 02시 55분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에 삽입된 엘턴 존 노래는 선율도 좋지만 가사도 좋다. ‘우리가 이 별에 도착한 날부터…생명의 세계에서 그것은 운명의 수레바퀴지요…일부는 도중에 포기하고 일부는 하늘로 오르겠죠…절망과 희망을 통해, 신념과 사랑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네….’

‘생의 순환(Circle of life)’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미국 ‘죽음교육’ 전문가 크리스티 다이어 의학박사가 부모들에게 추천하는 노래다. 그는 “죽음은 어둡고 피해야 할 불상사가 아니라 새싹이었던 잎이 가을과 겨울을 거쳐 땅으로 다시 돌아가는 순리임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이다.

미국 공립학교들은 학내 무차별 총기사고와 가족들의 자살, 갑작스러운 부모 사망에 따른 충격에 대처하기 위해 20여 년 전부터 ‘죽음교육’에 주목해왔다. 앞으로 닥칠 죽음을 현명하게 맞도록 돕는 교육이다. 독립과목 또는 가정·사회과목의 일부로 전국 초중고 공립학교의 20%가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강제수업은 아니지만 교사들은 전미교육협회(NEA) 지침서를 참고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고안해낸다. 자신의 부고 기사를 작성하게 하기도 하고, 자신의 장례식 모습을 이야기해 보기도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자살한 등장인물을 놓고 토론 수업을 했다는 교사도 있다.

갑작스러운 주변인들의 죽음에 직면한 슬픔을 덜어주기 위해 ‘슬픔 카운슬러(grief counselor)’까지 둔 학교도 있다. 지난해 12월 뉴저지 주 한 마을에서 열린 ‘라이언 왈프배 농구대회’가 대표적 사례다. 뇌종양으로 투병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먼로타운십 고등학교 대표 농구선수로 활약했던 라이언 왈프(당시 18세)가 사망하자 실의에 빠진 학생들은 ‘슬픔 카운슬러’의 도움으로 자선 농구대회를 열었고, 인근 5개 고교의 참여까지 이끌어냈다. 이들은 수익금을 모두 암센터에 기부했다. ‘웰 다잉’ 전도사 아이라 바이옥 다트머스대 의대 교수는 “죽음을 긍정하는 것은 생을 긍정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말한다.

서울대병원이 환자의 동의가 있다면 존엄사를 허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소식이다. 환자를 앞에 두고 치료 중단 여부를 논하는 것조차 죄악시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상당한 진전이다. 최근 별세한 장영희 교수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생을 긍정하는 사람이 죽음도 당당하게 맞을 수 있다는 공감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제 우리도 죽음을 보다 객관적으로 통찰하는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노지현 국제부 isityou@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