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인터넷 도덕 수업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6분


30대 중반의 남자가 온라인 게임을 했다. 그는 상대방의 현란한 솜씨에 대패한 뒤 채팅으로 입씨름을 벌이다가 상대방이 ‘초딩’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가 나이를 밝히자 상대방은 마지막 한 방을 먹이고 나가버렸다. “나이 많아 좋겠다.” 요즘 아이들은 펜보다 마우스를 빨리 잡는다. 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05년 인터넷 이용실태 조사결과 만 3∼5세 어린이의 47.9%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인터넷을 빨리 접하는지라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인터넷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딩이란 말도 인터넷에서 초등학생을 지칭하는 말로 시작되었다. 교육 게임 영화 오락 같은 분야에서 디지털키드가 인터넷을 주무르고 있지만 부모 세대는 감히 따라잡지 못한다. 초등학생들은 자신들의 지적 수준과 욕구를 인터넷 공간에 여과 없이 투영한다. 무책임한 댓글 인신공격 욕설문화 표절 게임중독은 부모와 교사들의 간섭이 없는 세계에서 무제한으로 이뤄진다.

▷역기능이 점점 커지는데도 제대로 된 인터넷 윤리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행 초등학교 ‘도덕(바른생활)’ 교과서와 보조교재인 ‘생활의 길잡이’에서는 3학년까지 인터넷 윤리에 대한 내용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 4학년 2학기 도덕 교과서에서 처음 ‘해킹의 위험성’ ‘인터넷 다운로드를 통한 표절의 비도덕성’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을 따름이다. 5학년 도덕 교과서에서 ‘인터넷과 다른 사람들의 권익’이라는 제목으로 본격적으로 네티켓을 다룬다.

▷내년부터 4학년 2학기 도덕 교과서에 인터넷 허위정보의 폐해를 경고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학교가 쉰다는 거짓말을 학교 홈페이지에 올리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구체적 사례가 등장한다. 지난해는 광우병 쇠고기, 전경의 여대생 폭행치사, 최진실 사채설 등 인터넷을 통한 허위정보 게시와 악플이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이런 인터넷 선동에 휘둘리지 않도록 어린이들에게 인터넷에 입문하는 단계부터 가상공간에도 현실세계처럼 엄연히 질서와 윤리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줘야 한다. 현대인은 현실세계와 사이버공간 두 곳에서 동시에 살아간다. 도덕 교과서도 인터넷 세상에 맞추어 바뀌는 게 당연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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