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다 죽었을까?” 나주 미라의 비밀 캔다

  • 입력 2009년 5월 8일 02시 56분


고려대 연구팀이 다채널컴퓨터단층촬영(MD-CT)으로 지난달 전남 나주시에서 발굴된 이씨 여인의 미라를 검사하고 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고려대 연구팀이 다채널컴퓨터단층촬영(MD-CT)으로 지난달 전남 나주시에서 발굴된 이씨 여인의 미라를 검사하고 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조선 초기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파평 윤씨 미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임신부 미라’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조선 초기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파평 윤씨 미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임신부 미라’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과학의 힘으로 베일 벗는 미라

《눈앞에서 본 미라는 살아있는 듯했다. 비록 검붉게 변했지만 조선시대에 살았던 그녀의 피부는 아직 탄력이 있었다. 의사가 손가락으로 피부를 눌러보자 팽팽하게 되올라왔다. 얼굴엔 속눈썹이 남아 있고 반쯤 감긴 눈꺼풀 속엔 검은 눈동자까지 보였다. 지난달 29일 오후 전남 나주시에서 발굴된 미라 1구가 450년 세월을 넘어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CT-MRI 촬영… 내시경 검사…

“사망원인 찾아라” 토양검사도

7년전 파평 윤씨 ‘임신부 미라’

첨단기술로 자궁벽 파열 확인

의료진은 인체의 3차원 영상을 만들 수 있는 다채널컴퓨터단층촬영(MD-CT)으로 미라의 온몸을 샅샅이 찍었다. X선 촬영도 했다. 간단한 검사 결과 미라는 뼈가 부러진 곳은 없었으며 심장도, 허파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연구진은 “자기공명영상(MRI)촬영을 해도 영상이 나올 정도로 보존이 잘돼 있다”고 말했다. 이 미라는 지난달 17일 문화 류(柳)씨 문중 묘에서 발견된 것으로 류씨 집안에 시집온 이(李)씨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 출산중 태반 뒤집어져 사망 가능성

미라 전문가인 김한겸 고려대 의대 병리과 교수는 “이 미라는 족보에는 5월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겨울에 사망해야 미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망 시기가 아리송하다”고 말했다. 가장 큰 미스터리는 사망 원인이다. 김 교수는 “미라의 하복부 근처에 얇은 단백질 막이 덮여 있는 것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망 이후 부패 등으로 복수가 흘러나왔을 수도 있지만 출산 중 태반이 뒤집어져 사망했을 확률도 있다는 것이다.

고려대 연구진은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앞으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먼저 무덤 내부나 주변 토양을 분석한다. 계절마다 피는 꽃이 다르니 꽃가루도 사망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3차원 영상을 통한 치아분석, 방사선동위원소 분석 등 첨단 기술도 동원된다. 미라가 사망한 나이는 치아가 얼마나 닳았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예전엔 이를 뽑아야 했지만 이번 미라는 MD-CT 영상을 통해 이를 뽑지 않고도 3차원으로 턱관절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영상촬영 결과는 1개월 이상 지나야 나온다.

○ 우리나라 미라의 계보

국내에 연구용으로 기증된 적이 있는 완전한 형태의 미라는 7구뿐이다. 문중 묘에서 미라가 발견돼도 후손들이 대부분 재매장을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미라 연구의 효시는 2001년 경기 양주시에서 발견된 동자 미라 ‘단웅이’에서 시작된다. 단국대 의대에서 분석했는데 400여 년 전 6세가 되던 해 결핵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듬해인 2002년 발견된 파평 윤씨 미라는 세계 최초의 ‘임신부 미라’로 주목을 받았다. 가장 먼저 X선 촬영으로 태아를 확인하고 CT, MRI 촬영도 했다. 파평 윤씨 미라는 분만 도중 자궁벽 파열로 태아와 함께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이 미라의 장에서는 플랑크톤, 꽃가루, 기생충(선충)이 발견됐다. 당시 음식을 날 것으로 먹었다는 증거인 셈이다.

2004년 대전 계룡산 인근에서 미라 한 구가 발견됐다. ‘학봉장군’으로 불리는 이 미라는 사망한 지 600년 이상 지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미라다. 미라 전체를 정밀내시경 검사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이 미라는 현재 대전 계룡산자연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미라는 수백 년 전 조상이 전해 준 타임캡슐”이라며 “의료, 장례, 복식, 음식문화 등 다양한 과학적, 사학적 정보를 얻는 보물창고”라고 말했다.

○ 미라 발견하면 연구에 활용할 수 있어야

사람이 만든 이집트 미라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시신이 관속에서 ‘우연히’ 미라로 만들어진다. 먼저 시신이 완전히 밀폐된 환경에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미라가 대부분 모래자갈과 석회로 단단하게 둘러싸인 ‘회곽묘’에서 발견된 것도 이 때문이다. 회곽묘는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에서 주로 사용했다. 또 겨울에 매장한 시신이 미라가 될 확률이 높다. 시신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부패하지 않고 오랫동안 마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후손들이 조상의 미라를 발견해도 연구용으로 기증하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2003년 충남 태안군에선 300여 년 전 미라가 발견됐다. 피부색까지 거의 원래대로 보존된 미라였지만 후손들은 바로 화장을 했다. 2006년 전남 장성군에서 발견된 미라도 연구에 잠깐 쓰이다 다시 매장됐다. 김한겸 교수는 “다시 매장하더라도 몇 년만 미라를 연구할 수 있도록 연구기관에 기증하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더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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