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인터넷 제한적 실명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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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5월 4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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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지난달 9일 거부하면서 한국에서는 유튜브에 동영상이나 게시글을 올릴 수 없도록 했다. 이 제도는 인터넷에 글이나 동영상을 올리기 전에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만 다른 이용자는 실명을 알 수 없게 하는 낮은 단계의 실명제. 구글이 익명을 기본으로 하는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고 설명하자 야당과 일부 누리꾼도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인터넷에서의 익명성 또는 실명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전문가의 대조적인 주장을 소개한다.》

찬 - 실명으로 당당하게 말하는 논객 많아
인터넷도 사회규범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구글의 유튜브 서비스가 한국의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채택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많은 논쟁으로 이어졌다. 많은 사람이 인터넷에서는 익명성이 본질이고 중요한 가치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노력은 꾸준했다. 전자프런티어재단(EFF) 존 페리 발로의 1996년 사이버 스페이스 독립선언문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도 많은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그가 강조한 점은 자유로움과 정부와 기관으로부터의 독립성이지 익명성을 지키자는 얘기는 아니다.
인터넷 자체는 익명이나 실명과 큰 관계가 없다. 저작권에 대한 진보적 시각으로 유명한 스탠퍼드대 법대의 로렌스 레식 교수는 저서 ‘코드 2.0’에서 인터넷 접근성과 익명 또는 실명에 대한 시카고대와 하버드대의 정책을 비교하면서 이는 정책의 문제이지 인터넷의 본질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인터넷이 익명성을 기본으로 하는 구조에서 자기 확인이 점점 가능해지는 새로운 규제의 구조로 변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물론 그는 이런 방향이 정부의 규제보다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진화임을 강조했다.
소셜 네트워킹 시장에서도 링크드인이나 프렌스터는 실명을, 마이스페이스는 익명을 선택했다. 세계적으로 2억 명의 사용자를 돌파한 페이스북은 실명을 채택했다. 국내에서도 세이클럽은 익명, 싸이월드는 실명이다. 실명으로 할지, 익명으로 할지는 서비스 정책의 차이일 뿐이다. 자사의 정책을 숭고한 가치 보존으로 미화하는 일은 홍보의 수단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익명성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익명이 신뢰성 부족, 충동적 행위, 비규범적 활동을 유발하는 점은 1990년대 중반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익명을 사용해도 충분히 지속적인 대화를 하면 온라인에서 건전한 상호 작용을 유지할 수 있음이 확인됐다. 문제는 지속적 관계가 아니라 익명을 통해 치고 빠지는 악플러이다.
인터넷을 사회의 기본 인프라라고 보면 사회의 규범이나 가치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유튜브처럼 미디어 성격을 갖는 사이트에는 정확성이나 투명성 같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고민에서 나온 정책이 제한적 본인확인제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도구의 악용이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조차 필요 없다고 얘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외국의 많은 블로거는 실명으로 의견을 자유롭게 밝힌다. 국내에서도 진중권 교수 같은 논객은 이름을 밝히면서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한다. 문제는 익명 아래에서 언어폭력을 가하는 사람이지 정책이 아니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이고, 자유롭게 본인의 이름을 걸고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이지 익명성이 아니다.
한상기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반 - 표현자유 침해-개인정보 노출 우려
국가 추천 아이핀도 해킹 차단 장담못해

구글코리아의 유튜브 서비스와 관련하여 우리 법상의 인터넷 실명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반발이 나오자 방송통신위원회는 미국의 유튜브닷컴에 비실명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점까지 문제 삼는 모양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희망처럼 구글의 유튜브가 우리 법상의 인터넷 실명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한국 이외에 다른 국가로 세팅된 유튜브닷컴까지 차단해야만 할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유튜브닷컴 자체를 차단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는 듯하다.
우리의 인터넷 실명제는 선거와 관련된 인터넷 글쓰기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인터넷에서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 참여의 권리는 인터넷의 접근성과 익명성이라는 열린 구조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만약 실명을 강제할 경우 △모든 국민은 허위정보 및 타인에 대한 비방을 유포하는 자라는 사전적인 예단을 전제로 하여 과도하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개인정보관리통제권을 침해할 수 있으며 △범죄적 목적을 가지고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라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즉 인터넷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관리통제권(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실명제는 일반 사이트의 글쓰기에까지 본인확인 절차를 밟도록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제도로 발전했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도 사기업으로 하여금 비즈니스 운영에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수집 및 보관하게 함으로써 개인정보 제출을 강요받는 일반 국민에게 불필요한 불안감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사기업에 의해 수집된 정보가 국가기관과 해당 사기업에 의해 오용 또는 남용될 가능성이 클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제3자의 해킹에 의해 누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며 국가가 추천하는 아이핀 역시 해킹으로부터 100% 안전하지는 않다.
더 황당한 점은 국가가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면서 본인확인 절차와 본인확인정보 보관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이용자 명의의 (제3자에 의한) 부정 사용 가능성에 대해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줄이거나 면제받을 수 있다”고 하여 명의 도용 문제의 위험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가 개인에게 부여한 국민식별번호나 그러한 국민식별번호를 기반으로 만든 대체식별번호(아이핀)의 수집을 사기업에 의무화하는 방안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이버범죄는 수사의 기법을 선진화시키고 수사 인력을 확충해서 해결해야 한다. 인터넷 실명제는 다양한 인터넷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의 발전을 방해하고 개인정보 노출의 위험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김보라미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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