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한화 강동우, 땀에 젖은 방망이… “Again 3할”

  • 입력 2009년 4월 28일 07시 55분


마지막 신인 3할타자, 불운의 루키. 어느덧 프로 데뷔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그도 30대 중반의 나이(35)로 접어들었다. 1998년 프로 입단 후 세 번째의 트레이드. 언제나 푸른 사자 유니폼을 입고 있을 것만 같았던 그가 4번째 팀을 만났다. 2006년 삼성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된 뒤 2008년 KIA로, 지난해 10월 다시 한화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두산과 KIA에서는 1군보다 2군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강동우는 끝났다’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팬들 사이에서는 그의 이름 석자가 서서히 잊혀져갔다.

그러나 ‘믿음의 야구’, ‘재활 공장장’ 김인식 감독을 만나면서 그는 다시 그라운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서른다섯에 새로 얻은 붉은 심장. 시련과 절망을 딛고 다시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다. 독수리 군단의 붙박이 1번타자. 자신을 믿고 기용해준 노감독에 대한 보은의 날갯짓이자,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독수리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부활

26일까지 타율 0.286. 1번타자답게 팀내에서 가장 많은 볼넷(12)을 얻어냈고, 3번째로 많은 안타를 생산했다. 출루율은 0.390. 초특급 활약은 아니지만 1번타자 부재로 고민하던 김인식 감독은 그를 향해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다. 오히려 “동우가 재수가 없어. 잘맞은 타구들이 계속 정면으로 가고 있어”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기대 이상으로 잘 해주고 있다”며 고민의 조각 하나를 걷어냈다는 표정이다.

김 감독은 지난해 10월 그를 얻은 뒤 마무리훈련부터 지켜봤다. 특유의 무관심한 표정이었지만 곁눈질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훑었다. 아침에 대전구장에 나와 배팅, 점심 먹고도 배팅, 훈련이 끝난 뒤에도 엑스트라 배팅…. 강동우는 매일 같이 미친 듯이 방망이를 돌렸다. 이따금 김 감독이 지나가며 한마디 건넸다. “피곤하지 않냐? 양이 많지 않아?”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었던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는 “괜찮습니다”는 한마디만 한 채 돌아서는 감독의 등을 바라봤다.

“감독님이 저에게 관심을 보이는 걸 느꼈어요. 그때 생각했죠. 나를 데리고 온 분의 눈을 속일 수 없다. 솔직히 프로 데뷔 후 가장 많이 훈련한 것 같아요. 한화는 훈련을 많이 하지 않는 팀인데 저 스스로 개인훈련을 더 충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것이 나를 불러준 감독님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절망의 끝자락에서 변신을 선택하다

가을 마무리훈련. 강석천 타격코치는 그동안 수비코치를 하다 처음 타격코치를 맡아서인지 열정이 넘쳤다. 강 코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지금 폼으로는 빠른 볼 대처가 안될 것 같다. 상체를 세우고 하체에 중심을 많이 두는 쪽으로 타격폼을 바꿔보는 게 어때.”

20대도 아닌 30대 중반의 나이. 괜히 익은 타격폼을 손봤다가 실패하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여기서도 안되면 유니폼을 벗겠다’는 생각을 한 그는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바꿔보겠습니다.”

그는 코치를 믿었고, 코치는 자신을 믿어주는 그에게 매달렸다. 1월 하와이 전지훈련을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이슬을 맞으며 방망이를 돌리기 시작해 저녁까지 방망이와 씨름했다. 지쳐서 숙소 호텔 침대에 쓰러졌다가도 밤에 벌떡 일어났다. ‘나는 이만큼으로는 안 된다.’

그로서도 한 가지 더 걱정은 있었다. KIA에서부터 공을 던지는 왼쪽 어깨가 아팠기 때문이다. 이를 안 김 감독은 그에게 “어깨 훈련은 안하냐?”고 되물으면서 손혁 인스트럭터에게 가서 매일 틈날 때마다 재활훈련을 하도록 지시했다. 김 감독으로서는 강동우의 방망이가 살아나더라도 어깨가 안 되면 쓸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그리고는 어깨가 야물어진 그를 개막전부터 붙박이 1번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출장시키기 시작했다.

○믿음에는 믿음으로

상대팀 왼손투수가 선발로 나오면 ‘오늘은 빠지겠지’, 안타를 치지 못한 다음날 ‘오늘은 쉬겠지’ 짐작했지만, 그의 이름은 한번도 빠짐없이 한화 선발 라인업의 맨 위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SK와의 개막 2연전에서 3안타를 기록한 뒤 곧바로 두산과의 대전 3연전에서 12타수 무안타의 침묵에 빠졌다. 타율이 0.186까지 떨어졌지만 김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타율이 1할대로 떨어졌는데 감독님은 ‘신경 쓰지마라’는 한마디 외에는 없었어요. 타석에서 초조함이 사라지고 ‘오늘 못치면 내일 치면 된다’는 여유가 생겼죠. 안타를 못 치면 내가 더 속상했고, 다음 타석에서는 안타든 볼넷이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어요. 고맙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지만 김인식 감독님께 고맙다는 말, 열심히 하겠다는 말 외에는 드릴 말씀이 없네요.”

김 감독은 ‘울지 않는 새’를 다그치지 않는다. 울 때까지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그 기다림의 끝에 결국은 또 한 마리의 새가 부활의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한 셈이다.

○홀어머니의 되찾은 미소

예순다섯의 홀어머니는 요즘 전화기로 밝은 웃음을 터뜨린다. “동우야, 니가 야구장에 나오니까 좋다. 잘하든 못하든 사는 게 재미있다.” 어머니의 웃음소리에 막내아들도 웃는다. 그러나 수화기를 내려놓으니 가슴 밑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

그가 태어난 뒤 돌 무렵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홀로 3형제를 힘겹게 키워온 어머니. 결혼도 하지 않은 막둥이가 고향팀 삼성을 떠나 서울로, 광주로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 당뇨와 혈압이 악화됐다.

“그동안 2군에 있을 때 별 말씀이 없었거든요. 제가 야구장에 없으니까 세상사는 재미가 없으시더래요. 이제야 말씀하시는 걸 보니 그동안 많이 속상했나 봐요.” 대구에 사시는 어머니는 홈경기 때 원룸에 사는 아들을 위해 대전에 들른다. 따뜻한 밥을 지어줄 때 행복을 느낀다는 어머니다.

1998년 0.300의 타율을 작성하며 한국프로야구 마지막 신인 3할타자로 남아있는 강동우. 그 이후 어떤 루키도 타율 3할을 기록하지 못했다. 첫해 플레이오프에서 타구를 잡다 펜스에 부딪친 뒤 정강이 복합골절 수술을 받는 불운을 겪었던 그도 그 이후 한번도 3할을 달성하지 못했다.

“두산과 KIA 2군 시절 홀로 술을 마시고 울어보기도 했어요. 내가 이젠 이 정도밖에 안 되나. 그러면서 스스로 많이 독해진 것 같아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똥이 되든 한화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부딪쳐 보고 싶어요. 감독님이 항상 우리팀 1번, 2번타자만 살아나가면 타선은 걱정 없다고 말씀하시잖아요. 저도 한번은 더 3할을 치고 싶은데…. 쳐야죠. 그래야 우리 팀도 살 수 있으니까.”

한 겨울의 절망과 시련을 견뎌낸 매화나무 가지에 이 따스한 봄날, 매화 하나가 은은한 빛을 발하며 피어오르고 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화보]‘오늘의 영웅은 브룸바’ 히어로즈, SK 꺾고 5연패 탈출

[관련기사]‘깜짝 돌풍’ 히어로즈 황재균

[관련기사]두산 새 마무리투수 이용찬

[관련기사]김태균 “ML투수가 만만…난 ML타입인가봐”

[관련기사]이범호 “WBC서 얻은 것? 자신감이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