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혁명 문화 판도를 바꾼다]<1>상상을 현실로

  • 입력 2009년 4월 15일 03시 00분


《세계적인 대박 상품 ‘닌텐도 위’, 동네마다 들어서 있는 ‘스크린골프’, 유물이 하나도 없는 디지털 박물관, 그림책 속 동물이 입체적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북엔터테인먼트….

이제는 문화기술 (CT·Culture Technology)시대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즐기는 문화콘텐츠의 핵심에는 CT가 있다. CT는 영화, 게임, 방송영상, 가상현실 등 문화콘텐츠에 활용되거나 관련된 서비스에 사용하는 기술. 좀 더 즐거운 삶, 좀 더 문화적인 삶을 만들어 내는 CT산업은 한국 문화산업을 이끌 차세대 성장동력이다. ‘CT시대’를 맞아 그동안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그리고 한국게임산업진흥원으로 나뉘어 있던 문화콘텐츠 관련 업무가 5월 7일 출범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 통합되는 등 정부는 CT산업 진흥에 적극 나섰다. 일상 문화 콘텐츠에 녹아 있는 CT의 현황을 살펴보고 문화콘텐츠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디지털 충전! 3차원 태권브이 서울에 뜬다

“태권브이, 조인트 익스텐션(Joint Extension).”

13일 방문한 서울 강남의 ‘로보트 태권브이’ 사무실.

조그만 스크린을 띄우자 애니메이션이 아닌 진짜 로봇처럼 생긴 태권브이가 서울 거리를 활보한다.

1976년 김청기 감독이 만든 극장용 만화영화인 ‘로보트 태권브이’(가제·제작 신씨네·감독 원신연)가 디지털 기술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컴퓨터 그래픽 활용

33년만에 ‘실사’로 부활

김연아 피겨에 CT접목

드라마 제작도 기획중

2010년 개봉을 목표로 한 국내 최초의 로봇 실사 영화인 ‘로보트 태권브이’는 한국 영상산업의 CT 현주소를 보여 준다. 이 영화의 VFX(Visual Effect·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한 영화상의 시각적인 효과를 통칭) 작업에는 모팩, 매크로그래프, 인사이트비주얼, EON, 인디펜던스, FX기어, DTI픽쳐스 등 국내의 대표적인 VFX 업체 7개가 컨소시엄을 구성한 뒤 참여해 한국 기술로 태권브이의 실사 작업을 하고 있다. 순제작비만 150억 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으며 이 중 VFX 비용만 60억∼70억 원을 책정했다. 이 작품의 한강 전투 장면, 건물 폭파 장면 등에는 워터, 파이어 시뮬레이션을 비롯해 로봇이 건물과 부딪혀 잔해와 파편들이 흩어지는 효과를 내는 다이내믹 시뮬레이션 등이 사용됐다.

주식회사 로보트 태권브이의 박관우 실장은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는 주로 배경이나 시대 상황을 재현할 때 VFX 기술이 사용됐고 캐릭터 부문에서는 아직 시도된 적이 없다”며 “이번 태권브이 작업을 순수 우리 기술로만 이뤄낸다면 한국의 VFX가 한 단계 진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VFX 부문은 영상산업에서 콘텐츠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다. 100% 디지털로 만드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영화에서도 VFX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커지는 추세를 보인다. 총제작비 112억 원이 들어간 영화 ‘괴물’은 컴퓨터그래픽(CG) 비용만 50억 원(44.6%), ‘디워’도 총제작비 300억 원의 33%인 100억 원이 CG 비용으로 투입됐다. 할리우드에서도 ‘스파이더맨 3’와 ‘킹콩’의 경우 각각 제작비의 33%(1억 달러)와 40%(1억 달러)를 CG에 썼다.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수요와 달리 국내 VFX 업체는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VFX 업체는 총 25개다(2008년 7월 기준). 할리우드 VFX 스튜디오의 평균 인력이 300∼1800명 규모인데 비해 국내는 10명 남짓이 대부분이다. 영화 VFX는 평균 CG 컷이 포함되는 시간 10분당 3000만 원 선에서 계약이 이뤄지고 작품당 1억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그러나 작업 단가는 2005년에 비해 점점 낮아지는 상황이다.

모팩의 장성호 대표는 “VFX 기술의 난이도를 A∼G로 구분했을 때 C까지는 할리우드와 큰 차이가 없지만 F, G에 해당하는 고난도 기술은 완성도 면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국내 VFX 업체들이 가장 어렵다고 꼽는 고난도 VFX 기술로는 △디지털 액터 △워터 시뮬레이션 △헤어&의상 시뮬레이션 △다이내믹 시뮬레이션 등이 꼽힌다.

최근에는 이런 고난도 테크닉이 요구되는 디지털 액터를 활용한 드라마와 영화 제작도 추진되고 있다. KBS 드라마 ‘황진이’를 연출했던 김철규 PD는 현재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를 기획 중이다. 이를 위해 김연아의 피겨 동작을 디지털화해 가상 캐릭터의 얼굴에 조합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 테스트 동영상까지 나와 있는 상태다. 스키점프를 소재로 한 영화 ‘국가대표’(감독 김용화)에도 하정우 등 주연배우들의 디지털 액터가 등장한다. 디지털 액터는 배우를 대신해 시속 120km로 달려 130m 점프를 하는 고난도 동작을 선보이게 된다.

국내 VFX 기술은 할리우드에도 수출됐다. 지난해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져 전 세계에서 개봉된 영화 ‘포비든 킹덤’에는 매크로그래프 등 국내 업체 인력 200여 명이 참여했다. 인사이트비주얼의 강종익 대표는 “웬만한 기술은 상용화된 소프트웨어로 가동할 수 있어 이를 얼마나 현실감 있게 표현하느냐가 VFX 기술의 척도”라며 “영화는 현실감이 흥행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에 영화의 VFX 기술도 얼마나 더 실제에 가까운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배우보다 더 배우같은 ‘디지털 액터’▼

국내에서 ‘디지털 액터’는 걸음마를 뗀 수준이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진짜 배우보다 더 배우 같은 디지털 배우가 스크린을 누빈다. 국내 VFX 전문가 4명이 대표적인 디지털 액터들을 뽑았다.

▽‘반지의 제왕’의 골룸=역대 디지털 액터 중 모션 캡처 기술을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한 사례다. 모션 캡처란 실제 배우의 연기 모습을 적외선 카메라로 찍어 그 동작 그대로 가상 캐릭터에 옮기는 기술. 배우 앤디 서키스는 적외선 카메라가 감지할 수 있는 33개의 구슬센서를 몸에 단 채 연기했고, 이를 데이터로 만들어 골룸 캐릭터에 정교하게 입혔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벤자민=이 영화가 80대 노인부터 10대까지 점점 젊어지는 ‘역(逆)노화’를 표현하는 데는 CG의 힘이 컸다. 특히 80대의 왜소한 벤자민 몸은 디지털 액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벤자민 역을 맡은 배우 브래드 피트의 표정 연기는 CG로 만들어낸 늙은 벤자민의 얼굴로 옮겨졌다. 골룸과 같은 모션 캡처 기술을 사용했지만 실제 배우와 골룸의 얼굴이 전혀 달랐던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실제 피트의 얼굴과 늙은 피트의 얼굴을 유사하게 만들어야 해 더 어려운 기술이 필요했다.

▽‘킹콩’의 킹콩=서키스가 골룸에 이어 킹콩의 움직임을 연기했고, 동물 특유의 움직임을 위해 고릴라의 움직임도 포착했다. 킹콩에는 모션 캡처와 애니메이션 기법, 축소 기술 등이 총동원됐다. 특히 고난도 기술 중 하나인 동물 동작의 특성과 피부 질감, 털 한올 한올을 세밀하게 잘 살렸다. 킹콩이 사랑하는 여인 앤의 경우 얼굴 클로즈업 장면을 제외하고 킹콩과 함께 있는 대부분의 경우 디지털 액터가 사용됐다.

▽‘베오울프’의 모든 캐릭터=이 영화에는 모든 캐릭터가 ‘디지털 배우’다. 레이 윈스톤과 앤젤리나 졸리 등 출연하는 모든 배우가 디지털 복제품으로 등장하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 얼굴의 솜털까지 보일 정도로 정교하게 복제됐지만 눈동자의 움직임 등은 로봇처럼 다소 부자연스러워 기술적으로 2% 부족함을 드러냈다.

(도움말=강종익 인사이트비주얼 대표, 박관우 로보트태권브이 실장, 김정훈 매크로그래프 실장, 정성진 EON 디지털필름스 대표)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CT산업, 매출-부가가치-수출서 IT에 앞서▼

문화콘텐츠 산업의 시장 규모 증가 속도는 이미 정보기술(IT) 산업을 앞서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분석(2008년)에 따르면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년 대비 매출액 증가율(18.7%)은 IT 산업(8.4%)의 2배를 넘었다. 수출 증가율(18.7%)도 IT 산업(10.3%)보다 높았다. 세계적으로도 문화콘텐츠 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지고 있다. 영국의 종합컨설팅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세계 문화콘텐츠 산업이 2008년 1조7025억 달러에서 2012년 2조1977억 달러까지 성장(연평균 성장률 6.6%)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시아 시장의 성장률은 이보다 높은 8.8%로 전망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사용된 화려한 CG, 테니스 볼링 요가를 실제 스포츠처럼 즐길 수 있는 닌텐도 위처럼 문화기술(CT)은 문화콘텐츠의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 변수다. 뉴질랜드는 영화 ‘반지의 제왕’으로 국가 브랜드 광고 효과가 2800만 달러에 달했으며 관광객 수가 연평균 5.6%씩 증가했다. 특히 영화 상영 이후 뉴질랜드의 영상산업이 164% 성장해 2만 명의 고용 효과를 창출했다. 한국도 문화콘텐츠 시장의 규모가 2003년(44조 원) 이후 매년 9%씩 증가해 2007년 62조 원에 달했고 수출 규모는 같은 기간 27.8%나 늘었다(문화부 통계).

하지만 세계 시장점유율(2.4%)은 상당히 낮은 편. 미국(40.1%), 일본(7.6%), 영국(6.6%), 중국(6.3%), 프랑스(4.2%), 이탈리아(3%) 등에 이어 9위에 머물렀다.

미국은 민간 연구소들이 CT 개발을 주도하고 있으나 유럽은 국가와 민간이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정부 출연 기관인 DMC(Institute for Digital Media and Content)를 설립해 CT 산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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