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 감상 길잡이 20선]<19>위험한 미술관

  • 입력 2009년 4월 9일 03시 01분


◇위험한 미술관/조이한 지음/웅진지식하우스

《“서양미술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예술가의 이름이 등장한다…미술사가들은 그들에 대해 마치 처음부터 천재로 태어나 불멸의 명작을 창조한 것처럼 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그 화가들은 당대에 형편없는 작가로 비난받거나 후대의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지기도 하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새롭게 주목받으면서 극적인 컴백을 하기도 한다.”》

당대에 혹평받은 화가 6인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1571∼1610)의 작품 ‘펠레그리니의 마돈나’가 1605년 로마의 한 교회에 걸렸다. 이 작품은 이 교회의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像)이 먼 길을 걸어온 순례자 부부 앞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노부부가 놀라 무릎을 꿇은 장면을 묘사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 구도였다.

미술사학자들은 “카라바조가 이 그림으로 단숨에 유명해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단순히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불경한 그림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다고 말한다. 이 그림의 구도는 평범했지만 문제는 등장인물에게 있었다. 당시 교회에 걸린 그림에는 고귀한 신분의 사람만 등장했다. 그런데 카라바조 작품에 등장한 노부부는 먼지와 땀으로 더러워지고 신발조차 신지 못한 채 맨발을 드러낸 비천한 신분이었다. 또 마리아의 모델은 카라바조의 애인이던 하층민 출신의 ‘레나’라는 여성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불타 없어진 카라바조의 그림 ‘마태와 천사’(1602년)도 같은 이유로 가톨릭교회에서 외면받았다. 그림의 마태가 성인 모습이 아니라 들일을 끝내고 돌아온 농부 차림을 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그림 속 마태는 이마는 벗겨졌고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처럼 펜을 잡고 있었다. 지저분한 한쪽 발바닥을 내보였는데, 당대 사람들은 특히 이 발바닥이 성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저자는 카라바조의 고달픈 삶과 작품 세계를 연결시킨다.

이 책은 이처럼 지금은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당대에는 환영받지 못한 서양화가 6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독일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는 화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초반부마다 당시 관객들이 해당 작품을 접했을 때의 반응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내 흥미를 높였다.

프랑스 살롱전에서 낙선한 화가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풀밭 위의 식사’(1863년). 옷 벗은 여자와 옷 입은 남자라는 이 그림의 주제는 당시 보편적인 방식이었지만 유독 마네의 작품만이 심한 비난을 받았다. 옷 벗은 여자가 “뻔뻔하게도” 그림 정면, 즉 관객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이 나체로 침대에 누워 관객을 응시하는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1863년) 역시 비너스로 이상화된 여성의 신체를 그리지 않고 현실적인 여성의 몸을 그렸다는 이유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1892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전시회에는 “예술에 대한 모욕”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신문은 매일 뭉크의 그림을 공격했다.

개인의 심리적 불안과 절망을 묘사 대상의 과감한 왜곡과 생략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들은 당대인에게 ‘반란 행위’로 여겨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일찍 죽은 누이의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싶은 뭉크의 심정이 병마와 싸우는 연약한 소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과 떠나보내는 이의 죄책감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병약하게 태어난 뭉크는 어린 시절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광적인 신자가 됐다. 뭉크의 그림에는 이런 삶의 궤적이 하나하나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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