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 감상 길잡이 20선]<18>한 권으로 보는 서양 미술사 이야기

  • 입력 2009년 4월 8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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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 하나하나의 뜻풀이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해설자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물의 뜻만을 장황하게 설명하고는 그것으로 작품 해석이 된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진정한 미술작품은 결코 낱말사전이나 숨은그림찾기와 같은 것이 아니다. 미술작품에 있어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에 호소하는 저 깊은 미적 생명력인 것이다.”》

곰브리치는 그렇게 봤지만, 나는…

‘한 권으로 보는 서양 미술사 이야기’는 선사시대부터 20세기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의 역사를 한 권에 모은 책이다.

저자는 “현실의 역사 속에서 미술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해 왔는가를 살피는 것이 미술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낭만주의나 신고전주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던 루소의 사상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순수성과 소박함에 주목한 루소의 생각이 합리적인 사고 너머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에 집중한 낭만주의 화풍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처럼 당시 사상이나 문학작품을 설명하며 미술과 함께 작용과 반작용을 되풀이해온 문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미술 작품에 대한 설명도 역사적 흐름 안에서 이뤄진다. 인간의 신체를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평가받는 고대 그리스미술도 초기에는 딱딱하고 경직된 이집트미술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기원전 520년경 제작된 ‘아나비소스의 쿠로스’ 조각상은 팔과 다리를 뻣뻣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던 예술가의 노력들이 쌓여 마침내 ‘벨베데레의 아폴론’이나 ‘밀로의 비너스’ 같은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

과거의 작품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이 매번 정확했던 것은 아니다. 선사시대 동굴벽화의 회화양식에 따라 벽화의 연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본 르루아구랑의 연구는 새로운 과학적 분석 방법이 나오면서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르루아구랑은 같은 양식이라면 같은 시대에 그려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 중 같은 양식이지만 1만 년의 차이가 나는 것도 있다.

학자들의 의견이 나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H W 잰슨은 미켈란젤로가 신플라톤주의를 받아들여 육체를 영혼의 감옥이라고 여기며 작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자는 잰슨의 의견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육체를 영혼의 감옥이라고 생각한 것은 신플라톤주의가 아니라 플라톤의 사상이다. 오히려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유심히 보면 그가 육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곰브리치나 빙켈만 등 서양의 권위 있는 미술사학자와 미학자의 의견을 인용하면서도 그 의견에 매몰되지 않는다.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반영하면서도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데도 망설이지 않는다.

저자는 서양미술과 한국미술의 연관성에 주목해 작품 해설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속 예수 뒤쪽 벽면의 아치형 구조물과 한국 석굴암 본존불의 광배를 연관지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아치형 구조물은 예수의 후광을 표현한 것인데 머리 바로 뒤에 후광을 그리지 않고 조금 떨어진 벽면에 그린 것이 석굴암 본존불의 광배를 표현한 방식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서양미술이 갓 탄생한 시기부터 모방과 차용이 횡행하는, 노쇠하다는 평까지 듣는 오늘날까지 서양미술의 일생을 한 권에 담아낸 책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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