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 감상 길잡이 20선]<16>알베르토 망구엘의 나의 …

  • 입력 2009년 4월 6일 02시 53분


◇알베르토 망구엘의 나의 그림 읽기/알베르토 망구엘 지음/세종서적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경험에 의해 해석된 그림이다. 한마디로 아는 만큼 보는 것이다. 이는 마치 단어와 문법의 구문을 모르고서는 그 언어를 읽어낼 수 없는 이치와도 같다. 고흐가 그린 밝은 색의 고기잡이배들을 처음 보는 순간, 나는 뭔가 내가 알고 있던 것이 그 안에 반영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신기하게도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이미지들이 그림에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다.”》

화가를 알면 그림이 보인다

위대한 작가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그들이 쓴 책에서 끄집어낸 ‘독서의 역사’로 알려진 작가이자 문화평론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그림 읽기를 시도한다. 언어와 달리 고유한 문법과 의미체계를 상정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지만 다양한 작가의 이야기와 그들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면 그림을 읽을 수 있다고 믿는다.

시작은 20세기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 여성작가인 미국의 조앤 미첼(1925∼1992)이다. 저자에게 미첼은 침묵하려 했던 작가. 생전에 “나는 나 자신을 잊고 싶었다. 자의식을 갖는 순간 나는 그림을 중단했다”고 말할 만큼 작품에서 명확한 의미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대표작인 ‘두 대의 피아노’(1980년)에서 표현한 노란색의 짧은 선들과 흰색 공간을 예로 든다. 25년의 결혼생활이 파탄 난 직후 이 작품에 매달린 미첼에게 노란색 선들은 자신의 뒤에 숨어 있는 어두움, 우울증을 극복하려는 노력이었다. 흰색 공간은 침묵 그 자체이자 청각장애인이었던 어머니의 색. 미첼 스스로가 “흰색이 침묵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의 내부에 어떤 종류의 침묵이 존재하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

초기 플랑드르 회화의 대가인 로베르 캉팽(1378∼1444). 저자가 보는 캉팽은 그림 소재를 통해 비밀스러운 메시지를 전달한 화가다. 저자는 그의 작품으로 알려진 ‘화열(火熱) 가리개 앞의 동정녀와 아기 예수’에서 성모 마리아가 젖을 물리기 위해 내어 놓은 젖가슴에서 다양한 함의를 읽어낸다. 탈무드에서 여성의 젖가슴은 부모의 사랑이지만 캉팽과 동시대 화가였던 프랑스의 장 푸케에게는 관능미였으며 기독교에서 마리아의 젖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입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캐나다 태생의 화가 메리애나 가트너(1963∼)는 ‘악몽의 이미지’를 그리는 화가. 머리에 뿔이 달리고 온몸에 문신을 한 채 무표정한 아기를 그린 ‘디아블로 베이비(Diablo Baby)’로 알려진 가트너는 “아름다운 것과 불길한 것을 혼합하는 전략”으로 서로 어울리지 않는 특성을 혼합해 모호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로 평가된다.

아버지의 유전적 영향으로 얼굴이 고양이처럼 털로 뒤덮여 고통 받았던 이탈리아의 여성화가 라비니아 폰타나(1552∼1614)는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 화가였다. 저자는 사람의 몸에 짐승의 얼굴을 그린 듯한 가족의 초상화와 자화상을 그린 화가에게서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아픔을 읽어낸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전쟁인 이수스 전투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인간의 자화상’을 표현한 고대 그리스의 화가 필록세누스, 여성을 짓밟는 잔인한 남성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던 파블로 피카소, 흑인 여성 노예와 유럽인 사이에서 태어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브라질의 천재 조각가 알레이자디뉴 등 12명의 예술가와 작품세계를 담았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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