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實勢차관 4+1 모임 부적절하다

  • 입력 2009년 3월 30일 02시 59분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장수만 국방부 차관 등 이른바 ‘실세 차관’ 4명과 장관급인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매주 수요일 밤 정기적으로 같은 장소에서 8주째 모임을 갖고 있다. 국정 현안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정보 교환이 목적이라지만 논의된 내용이 빠른 속도로 부처 공무원들에게 전파되고 영향력과 추진력도 갖는다고 한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나 대통령직인수위 출신인 이른바 ‘측근 그룹’이라서 적지 않은 공무원이 이들의 눈치를 살핀다고 들린다. 이들만의 폐쇄적인 정기 모임은 취지가 순수하다고 하더라도 자칫 정부 내 이너서클로 변질되면서 권력형 사조직의 폐단을 잉태할 우려가 있다. 퇴근 후에 모이는 것은 자유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들이 무슨 목적으로 만나느냐에 따라 모임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국정은 시스템으로 운영돼야 투명성 책임성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조직법에 따라 각부 장관들이 국정을 논의하는 국무회의와 별개로 대통령령에 따라 차관들이 주 1회 또는 필요 시 회동하는 차관회의도 존재한다. 이 밖에도 국정과 관련된 여러 형태의 논의 및 의결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그런데도 ‘왕(王)차관회의’가 따로 있다면 공식 차관회의는 ‘껍데기’밖에 안 될 우려가 있고, 나머지 20여 명의 차관(급)은 허수아비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이에 따른 국정 왜곡도 필연적이다.

정권의 성공을 바라는 충정이 크고 의욕이 넘친다 하더라도 차관은 차관다워야 하고, 무엇보다 각자 소속된 부처에서 소임에 충실해야 한다. 이들이 국정 전반을 걱정이야 할 수 있겠지만, 정작 각자 소관 분야의 개혁과제를 몸과 마음을 던져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이 정부는 법치를 강조하는데,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정부조직법 및 행정체계 관련법을 잘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한 법치다. 실세 차관 4+1 모임은 인치(人治)의 냄새를 풍긴다.

이 대통령이 이들의 모임에 대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알고도 묵인한다면 정부 조직의 교란을 방치하는 것이며, 모르고 있었더라도 문제가 있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조직에 껍데기와 알맹이가 따로 있고, 장관이 차관의 눈치를 살피며, 차관 중에도 1등급과 2등급이 구별되는 정부가 정상 작동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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