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 감상 길잡이 20선]<11>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

  • 입력 2009년 3월 30일 02시 59분


《“현대의 문맹은 이미지를 못 읽는 것이다. 현대는 예술 산업으로 고부가가치를 내는 시대며, 미술은 스트레스와 상처가 많은 삶을 치료하고 영감의 뜨거운 에너지를 준다. 감춰진 우리 내면의 이야기와 내밀한 충동과 욕망을, 갈등과 고뇌를 풀어헤쳐 보이는 창작 과정은 큰 위험을 무릅쓴 것이다. 목숨을 걸어 상투적이고 지루하면서 폭력적인 삶의 방식을 바꾸려는 진보적인 작업들은 혁명적이기까지 하다.”》

상식-상실에 저항하는 ‘꽃다발 폭탄’

마룻바닥에 큰 해바라기가 피어있다. 그 해바라기를 한 소년이 물끄러미 쳐다본다. 키스 에드미어의 ‘해바라기’(1996년)는 초현실적 이미지로 의문을 갖게 한다. “왜 해바라기가 여기 있지.” 소년의 표정도 바로 그렇다. 이는 데페이주망, 어떤 사물을 의외의 장소에 놓아 낯설게 하는 방식이다.

오줌이 담긴 투명한 통 속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 상을 담가놓고 촬영한 앙드레 세라노의 ‘오줌 구세주’(1987년)는 어떤가. 이 작품은 미술계를 넘어 종교계와 의회에서 신성모독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세계 미술계에 이름이 알려진 30, 40대 작가들 70여 명의 작품을 소개하며 ‘난해한’ 현대미술의 길잡이를 시도한다.

여기 소개된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은 낯설고 불편하고 보기 민망하거나 섬뜩할 때도 있다. 회화 조각 사진 비디오 마네킹 설치미술 등 다양한 형식을 갖춘 이 작품들은 파격을 추구하며 신선함과 놀라움을 안긴다.

벌떡 서있는 초록 개, 박제된 황소, ‘나는 절망적이다’(I'm desperate)라는 글을 들고 있는 말쑥한 양복차림의 청년, 소의 머리와 타조의 몸을 섞은 작품 등.

저자는 낯선 현대미술이 매혹적인 이유에 대해 ‘끝에서 끝까지 가려는 정신을 보여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여기에 소개한 작가들을 상식과 상실에 저항하는 자들이며 폭력적인 세상에 폭탄 같은 꽃다발을 던지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기발하고 발칙한 작품 속에서 저자는 자신이 이해한 현대미술의 공통점을 제시한다. 현실에 대한 비판, 섹슈얼리티, 욕망과 상실, 삶과 죽음, 일상성 등 어느 분야를 다루든 비장함이나 낯섦 속에 유쾌함이 배어있다는 것이다. 손잡이 중간 부분이 불룩한 ‘임신한 망치’(김범)나 얼굴보다 큰 가슴에서 모유를 뿜고 있는 마네킹 ‘미스 쿠’(무라카미 다카시) 등은 현대 미술의 유머 코드를 보여준다.

현대미술이 난해하고 도대체 예술인지조차 모르겠다는 통념에 대해 저자는 엽기적 성향으로 미술계를 경악하게 한 데미안 허스트(1965∼)의 말을 인용한다.

“나한테 예술이란 이야기를 하는 거다. 모든 이야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를 하는 방법은 아주 많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아는 것이다. 일단 이야기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걸 들려주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현대미술은 보기 좋으면 좋고 보기 싫으면 싫은 거다. 굳이 미술사에 대해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서 보고 ‘와 굉장한데’ 하고 감탄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지, 그 이상 알 필요가 뭐 있겠는가.”

시인인 저자는 작품의 분위기와 주제에 맞게 3, 4명의 작가를 묶어 갈래를 친 다음 그에 맞는 시를 소개하며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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