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 감상 길잡이 20선]<7>워홀과 친구들

  • 입력 2009년 3월 24일 03시 04분


◇워홀과 친구들/김광우 지음/미술문화

《“워홀이 같은 이미지를 50번, 100번 또는 200번씩 반복해서 제작할 때도 그 이미지들은 같지 않고 조금씩 달랐다. 이렇게 해서 그는 똑같은 반복이란 있을 수 없음을 보여줬다. 이러한 미학은 그의 고유한 예술성으로 인식됐다. 뒤샹의 ‘이미 만들어진’ 것에서 워홀에게로 와서 ‘대중적인’ 것이 됐으며, 워홀이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이미 만들어진’ 또는 ‘대중적인’ 것은 하나의 고유한 물질로 인식됐다.”》

순수-상업미술 경계서 피어난 팝아트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1928∼1987). 죽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의 예술에 대한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다. 미술사학자와 평론가에 따라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열어젖힌 선구자로 극찬하는가 하면, 얄팍한 재능을 이용해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로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본인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이 책에 따르면 워홀은 말년에 “난 항상 상업미술가였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다면 그의 예술은 순수미술이란 측면에선 언급할 가치가 없는 셈인가. 하지만 바로 이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야말로 워홀의 예술 ‘팝아트’의 출발점이다.

미국 뉴욕시립대 등에서 예술사와 철학을 공부한 저자는 워홀이란 인물을 통해 바로 이 팝아트가 만개했던 1960∼80년대 미국 ‘뉴욕파’ 2세대를 들여다본다.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잭슨 폴록(1912∼1956)이 활동하던 1940, 50년대가 미국 뉴욕파 1세대라면, 팝아트의 정신적 대부라 할 수 있는 마르셀 뒤샹(1887∼1968)부터 워홀을 지나 ‘낙서화가’ 장미셸 바스키아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이 2세대에 해당한다.

이 책의 재미도 여기에 있다. 단지 워홀이란 인물에 초점을 맞춘 자서전에 그치지 않고, 그 시대를 함께 움직였던 미술인과 예술계 동향을 아우른다. 20세기 ‘이미 만들어진(ready made)’ 대중적 이미지를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복잡한 현대인들이 만들어낸 삶의 모습을 비춘 팝아트의 속살이 잘금잘금 드러난다.

예를 들어 작품 ‘행복한 눈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1960년대 워홀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을 보자. 둘은 당시 만난 적도 없음에도 우연히 비슷한 종류의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워홀은 만화를 이용해 ‘우아하면서도 야단스러움’을 창조하는 데 일가견이 있던 리히텐슈타인과 “충돌하는 게 싫어서인지 두려워서인지” 곧 만화를 창작 원료로 사용하지 않는다. 워홀의 작품 하면 떠오르는 메릴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이 나온 건 그 이후였다. 묘한 경쟁구도가 워홀의 대표적 ‘반복미학’을 표현하는 실크스크린 초상화를 탄생시킨 셈이다.

“워홀이 자신을 가리켜 상업미술가라 한 이유는 그가 작품을 상품처럼 제작했기 때문이다. 양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그랬다. 그는 자신이 어떤 작품을 제작하면 좋을지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물었으며,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거리가 되는 내용을 찾아 작품으로 만들었다. 실크스크린 초상화는 대부분 이런 이유에 따라 제작된 것이다. 이 점은 팝아트의 특징이기도 하다.”

미술 관련 책들은 문외한에겐 마냥 쉽지만은 않다. 우선 무수히 등장하는 미술가 이름부터 낯설다. 하지만 팝아트는 ‘예술인 체하는’ 권위를 벗어던진 대중적 친숙함이 무기 아닌가. 미술에 관심 없던 이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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