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 감상 길잡이 20선]<1>클림트 세기말의 황금빛 관능

  • 입력 2009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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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세기말의 황금빛 관능/마키오 키니 지음/마로니에북스

《“예술가로서의 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세상에 알려질 만한 유일한 것인 내 그림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발견해야 한다.”》

예술공식 깨버린 ‘혁명가’

이 책은 ‘유디트Ⅰ’ ‘키스’ 등 관능적인 아름다움과 현란한 색채, 혁신적인 구성의 매혹적인 작품들로 잘 알려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에 관한 전기다. 클림트가 스승들의 아카데미적인 기법에서 멀어져 혁신적인 작업을 시도해 나가기까지 그 여정을 설명했다. 이탈리아의 미술비평가인 저자는 한 예술가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인생의 주요 사건들이 그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시기별 대표작과 함께 살펴봤다.

클림트라고 하면 사랑의 황홀경과 에로티시즘이란 대담한 주제와 장식적이고 상징적인 형태의 표현, 황금빛의 찬란함을 떠올리지만 초기작부터 이런 면모가 엿보인 것은 아니다. 귀금속 세공사였던 아버지와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클림트는 응용미술학교인 공예미술학교로 진학해 르네상스, 바로크 등 고전주의를 충실히 따른다. 그가 오스트리아 예술운동의 개혁자이자 급진적인 모더니즘 운동의 선구자로 자리 잡았던 것은 30세 이후부터다. 1892년 아버지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공유했던 동생 에른스트가 잇따라 세상을 뜬 뒤부터 그의 작품은 결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고전적 대칭이 아닌 비례적 균형이, 장식적 표현을 담은 금색이 이 시기의 ‘사랑’ ‘카를로스 의상을 입은 배우 요제프 레빈스키의 초상’ 등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1897년부터 그는 분리주의자로 전환한다. 분리주의는 ‘일군의 예술가가 예술의 개혁을 내세우고 아카데미즘과 부르주아적 보수주의를 고수하는 기존의 공식적인 조직과 단절하는 것’을 뜻한다. 클림트는 오스트리아의 가장 근대적이고 대담한 예술가들의 모임인 빈 분리파의 활동을 이끌며 분리파 전시회를 개최한다.

그의 작품이 완숙기인 ‘황금시기’에 접어든 것은 1901∼1909년으로 벽화 ‘베토벤 프리즈’가 대표적이다. 길이 24m에 이르는 이 벽화는 베토벤 9번 교향곡의 마지막 합창곡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클림트는 이 작품에서 여성적 관능에 악의적이고 파괴적인 가치와 평온과 위안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가치를 부여했다. ‘베토벤 프리즈’는 대성공을 거둔 동시에 많은 비판을 받으며 반향을 일으켰다.

클림트의 작품들은 파격적인 주제와 선정성 등으로 당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전시회가 취소되기도 했고 그가 아카데미 교수로 지명되는 데도 걸림돌이 됐다. 나체 임신부의 모습을 그린 ‘희망’은 당국의 금지로 개인전에도 전시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시기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잘 알려진 ‘키스’다.

이후의 클림트는 잘츠부르크 동쪽의 아터제 호반에서 일생의 친구이자 반려자인 에밀리 플뢰게와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며 풍경화를 그렸다. 50점이 채 안 되지만 클림트 화풍이 반영된 독창적인 그림들이다. 스토클레 프리즈(커다란 나무에서 뻗어나간 나선 모양의 가지들이 둥글게 말려 있는 당초무늬 벽화) 이후 꽃, 동양적 모티브 양식이 돋보이는 화려한 양식을 선보인다. 그는 1918년 뇌출혈 후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 다양한 사진 자료와 그림이 수록돼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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