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무릎서 신앙심 키웠다”

  • 입력 2009년 2월 17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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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추기경과 어머니

“신부가 되거라” 보통학교 다닐때 권유

장사 배우겠다는 생각 접고 ‘사제의 길’

“어머니가 저를 사제의 길로 인도해 주셔서 한생을 잘 살다가 왔습니다. 속상하고 힘들었던 일도 털어놓고 싶은 게 좀 있지만….”(웃음)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하늘나라에서 어머니를 만났을 때 가장 하고 싶다고 밝힌 말이다.

가톨릭은 물론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는 어머니의 사랑이 신앙의 원천이 됐다고 자주 언급했다.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성직자가 혈육의 정에 연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어머니가 그러하듯이 나에게도 내 어머니는 가장 크고 특별한 존재입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하고, 이 막내아들을 위해서라면 10번이라도 목숨을 내놓으셨을 분입니다.”

고인은 조부가 1868년 무진박해 때 희생당한 순교자 집안 출신이다.

1955년 작고한 어머니(서중하)는 가난한 옹기장수 아버지(김영석)와 결혼해 평생을 힘겹게 살았지만 자식들 앞에서는 한 번도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김 추기경은 “어머니는 당신 이름 석 자와 하늘 천(天) 따 지(地) 정도의 글자밖에 아는 것이 없었고, 가난 때문에 거의 평생토록 옹기와 포목을 머리에 이고 팔러 다니면서도 곧은 신앙심과 여장부 같은 기질만은 대단했다”며 “그런 어머니 무릎에서 신앙심을 키우고 인간으로서 기본 교육을 배운 것을 하느님께 감사한다”고 회고했다.

어머니는 보통학교에 다니던 고인과 세 살 위의 형(김동한 신부·가롤로·1983년 선종)을 불러 앉힌 뒤 나중에 신부가 되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읍내 상점에 취직해 5, 6년쯤 장사를 배워 독립한 뒤 25세가 되면 장가갈 생각이었다는 것이 훗날 고인의 고백이다.

어머니는 가난 속에서도 자식 둘을 사제의 길로 인도했고 방랑벽이 있던 큰형님을 찾아 세 차례나 만주를 찾는 등 깊은 신심과 사랑으로 김 추기경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제 그 앳된 볼의 막내아들은 주름살 가득한 ‘혜화동 할아버지’가 돼 하늘나라에서 어머니를 만나고 있으리라.

늙으신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단 5분만이라도 나를 찾아와 주신다면 무릎을 꿇고 어머니의 야윈 다리를 주물러드리고 싶다는 것이 생전 고인의 사모곡(思母曲)이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동아닷컴 임광희 기자


▲동아닷컴 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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