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변희재]2009년, ‘88만원 세대론’은 위험하다

  • 입력 2008년 12월 24일 03시 05분


이달 20일, 강준만 조흡 등 진보 성향 학자들의 모임인 소통포럼에서 ‘88만 원 세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실크로드CEO포럼에서는 1975년생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씨가 참석해 우석훈 박사 등과 진솔하게 의견을 나눴다. 어찌 보면 각기 다른 세대론(世代論)을 놓고 처음으로 공론장에서 소통을 시도한 셈이다.

우 박사의 ‘88만 원 세대론’은 계급과 이념갈등이 극으로 치닫던 노무현 정권 말기에, 소외받은 젊은 세대의 현실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촛불시위 등을 거치면서 이 담론의 심각한 결함이 드러나 오히려 젊은 세대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었다.

첫째, 386 이후 세대의 잠재적 가능성을 찾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특히 386세대를 독서량과 미래 대처 능력 등을 근거로 전 세계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한 세대라 예찬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1968년생으로 386세대 끝자락에 서 있는 우 박사 역시도 386세대의 공고한 소속감에 매몰돼 있는 게 아닐까?

둘째,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는 데 크나큰 장애가 되고 있는 386세대의 인맥 패거리 구조, 그리고 인터넷 폭식자 포털 등의 폐단을 외면하고 있다. ‘88만 원 세대론’이 젊은 세대를 위한 게 아니라 “잘난 386세대가 영원히 너희를 지켜주겠다”는 세대 지배형 담론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386세대 지배형 담론 아닌가

셋째, 그러다 일부 10대가 광우병 파동 때 촛불을 들고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민주주의 세대가 나타났다”며 너무나 가볍게 10대와 20대를 갈라놓았다. 그렇다면 촛불을 들지 않은 10대는 무슨 세대인가? 광우병대책위가 이름을 바꿔 조직한 민생민주국민회의는 내년에 2차 촛불시위를 주도할 계획이라고 한다. 만약 10대들이 진보좌파 386세대가 기획한 이러한 집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또다시 “너희는 미래가 없다”며 온갖 협박을 가할 것 아닌가.

넷째, ‘88만 원 세대론’은 미국과 일본 등 전 세계 또래들과의 소통에 장애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에서도 소외받은 젊은 세대가 ‘2채널’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모여 있다. 그러나 일본은 이들이 인터넷과 대중문화 등에서 놀라운 잠재력을 갖추고 있음을 간파하곤 게임, 애니메이션, 정보기술(IT) 업계의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우리와 너무 대조적이다.

미국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 1977년생 이후 ‘O세대’의 활동이 눈부시다. 이들은 조지 W 부시 정권 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미국의 국제적 위상과 IT경제가 급격히 추락하고 있음을 몸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의 젊은 세대의 이익을 위해 오바마를 선택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24) 씨로 그는 인터넷 모금을 주도하며 오바마의 IT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처럼 진취적인 일본과 미국의 젊은 세대들 앞에서, “이젠 정규직이 되고 싶어요” “대학도 못 가고 소가 되어 죽을 거예요”라며 386 운동가들이 주입한 주문(呪文)만을 되뇌게 하고, 청년 창업의 장애물인 포털의 배나 채워 주기 위해 불법성 댓글을 쓰도록 부추기는 ‘88만 원 세대론’은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5월 실크로드CEO포럼은 미국의 ‘O세대’ 연구자인 하버드대 존 발프 박사를 불러 약식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발프 박사가 미국의 젊은 세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했을 때 우리 회원들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젊은이들 잠재력 지원해줘야

“한국도 포털 권력만 해소된다면 응용기술의 측면에서 젊은 세대의 인터넷 능력이 더 뛰어나다. 또한 자폐화(自閉化)된 미국의 대중문화와 달리 한국의 젊은이들은 아시아 곳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해당 지역의 대중문화를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미국의 젊은 세대는 한국의 젊은 세대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발프 박사는 우리 회원들의 주장을 한 문장도 놓치지 않고 적어 갔다.

우 박사를 비롯한 ‘88만 원 세대론자’들도 꿈과 비전을 찾는 우리 젊은이들의 새로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의 담론에서 잘못된 부분이 수정되지 않으면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억압으로 변질되기 마련인데, 386세대들은 그동안 이런 행태를 반복해 왔다. 다른 것은 몰라도 386세대가 남의 세대에 대해 얘기하겠다는 ‘88만 원 세대론’만큼은 이런 길로 들어서지 않아야 할 것 아닌가.

변희재 객원논설위원·실크로드CEO포럼 회장 pyein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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