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쓰레기더미 속 핀 꽃들 “희망을 노래해요”

  • 입력 2008년 11월 27일 02시 59분


26일 케냐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원이 파리나무십자가합창단처럼 세계적인 합창단을 꿈꾸며 서양 클래식곡과 아프리카 전통곡을 섞은 레퍼토리로 흥겨운 무대를 연출하고 있다. 용인=김재명 기자
26일 케냐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원이 파리나무십자가합창단처럼 세계적인 합창단을 꿈꾸며 서양 클래식곡과 아프리카 전통곡을 섞은 레퍼토리로 흥겨운 무대를 연출하고 있다. 용인=김재명 기자
아프리카 전통북인 ‘젬베’를 두들기며 ‘잠보송’을 연습하고 있는 어린이.
아프리카 전통북인 ‘젬베’를 두들기며 ‘잠보송’을 연습하고 있는 어린이.
《“잠보!(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우리는 아무런 염려 없어요. 하쿠나마타타(아무 문제없어요)!” 26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한 교회의 연습실. 케냐의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 아이들이 한국순회공연을 앞두고 영화 ‘라이언 킹’에 나오는 노래인 ‘잠보송’을 부르고 있었다. 》

두번째 내한공연 갖는 케냐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

이들은 ‘젬베’라는 전통북과 ‘가얌바’를 두들기고 흔들며 춤을 추면서 흥겹게 아프리카의 전통민요를 불렀다.

검은 피부에 짧은 머리카락을 곱게 땋은 아이들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어메이징 그레이스’ ‘마더 오브 마인’ ‘고요한 밤 거룩한 밤’과 같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자 서양의 어떤 소년합창단 못지않은 천상의 화음이 들려 왔다.

○ 창단 6개월 만에 대통령궁서 공연

12월 3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한국에서 두 번째 순회공연을 갖는 지라니 합창단원들은 케냐의 나이로비 인근의 고르고초(스와힐리어로 ‘쓰레기’라는 뜻) 지역의 극빈층 아이들로 구성돼 있다. 엄청난 규모의 쓰레기 집하장 주변에는 생계를 잇는 10만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부모 없이 버려진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사는 경우도 많았다.

지라니 합창단은 2006년 12월 굿네이버스의 지원을 받아 바리톤 김재창(52) 씨에 의해 창단됐다. 그는 “아이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소리 지르는 법’부터 가르쳤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빈민가의 아이들은 대부분 눈동자가 풀려 있고, 자신 없는 목소리에 동작은 흐느적거렸기 때문이었다.

지라니합창단은 창단 후 빠르게 성장했다. 2007년 6월 케냐 정부수립기념일에 대통령궁에서 공연을 한 것에 이어 지난해 말 첫 해외 공연으로 한국 공연에 이어 올해 6∼8월 미국 뉴욕, 시카고에서도 순회공연을 했다. 83명의 합창단원 중 11명을 제외하고 72명은 출생신고조차 돼 있지 않아 여권을 만드는 데도 몇 달이 걸려야 했다.

합창단 아이들은 무대 경험을 한 뒤 걸음걸이가 당당해지고 눈빛이 살아났다. 의사, 비행사, 축구선수, 음악가와 같은 꿈도 생겼다. 특히 미국 대선에서 아버지가 케냐 출신인 버락 오바마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합창단원들은 모두들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 영상 취재 : 전승훈 기자

셀린 아코트(15) 양은 “케냐에는 많은 어린이가 병에 걸려 죽어가는데 어린이들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며 “흑인인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걸 보고 나도 내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로렌스(15) 군은 “합창단에 들어오기 전에는 학교가 끝나면 담배를 피우고 마약을 하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다”며 “전에는 아무런 꿈이 없었지만 이제는 파일럿이 되고 싶은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 이번 공연 주제는 ‘하쿠나마타타’

지라니 합창단의 이번 한국 공연의 주제는 ‘하쿠나마타타’다. 케냐의 전통어인 스와힐리어로 ‘아무 문제없어요’란 뜻이다. 불황의 여파로 지치고 힘들어 있을 때 슬럼가에서 희망을 키워 온 아이들이 ‘하쿠나마타타’라고 외치는 것이다. 아이들은 26일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도 녹음한다.

김 씨는 “‘도, 레, 미’도 몰랐던 아이들에게 합창은 세상을 향해 희망을 외치고,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됐다”며 “절망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도전에의 힘을 주는 검은 천사들의 노래를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서울 한양대 백남음악관(12월 22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12월 30일), 서울 경희대 평화의 전당(2009년 1월 2일) 등 10개 도시 순회 공연. 02-3461-7200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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