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한한대사전 16권 30년만에 완간 장충식 단국大 명예총장

  • 입력 2008년 10월 21일 02시 58분


장충식 단국대 명예총장이 1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단국빌딩 범은장학재단 이사장실에서 16권에 이르는 ‘한한대사전’을 30년에 걸쳐 최근 완간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장충식 단국대 명예총장이 1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단국빌딩 범은장학재단 이사장실에서 16권에 이르는 ‘한한대사전’을 30년에 걸쳐 최근 완간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한자문화 콘텐츠 세계 최강 기반 다졌다”

장충식(76) 단국대 명예총장은 최근 평생의 숙원 사업에 마침표를 찍었다.

1978년 편찬에 착수한 한자사전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의 마지막 권을 출간한 것이다. 사전은 색인집을 포함해 모두 16권. 수록 문자는 5만5000자, 어휘는 45만 단어에 이른다. 단국대에 따르면 중국 대만 일본의 대표적 한자사전보다 문자 수와 어휘 수가 많다.

‘한한대사전’은 한자 한 글자씩 뜻풀이를 하는 옥편과는 차원이 다른 사전이다. 한국의 고문(古文)에 나오는 한자 단어들을 최대한 찾아내 수록했다. 예를 들면 부수 ‘여덟 팔(八)’로 시작하는 부분에선 ‘팔(八)’에 이어 ‘팔가(八哥)’ ‘팔각(八覺)’ 등의 순으로 단어를 나열하고 각각의 단어에 뜻풀이를 붙이는 식이다. ‘팔가’는 ‘구관조’, ‘팔각’은 ‘여덟 가지의 나쁜 생각’이라는 뜻이다.

장 총장은 1950년대 말 고려대 대학원에서 동양사를 공부하던 시절 한자사전 편찬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문 원전 해석을 위해 한자사전을 이용하다가 한국에서 만든 한자사전이 없다는 사실에 문제점을 느꼈던 것이다.

“한자사전은 탐험가의 나침반처럼 역사 연구의 필수 도구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연구자들은 모두 일본 한학자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가 쓴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식 뜻풀이여서 한국에서 사용하는 의미와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한국에서 쓰는 한자 단어 가운데 아예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는 등 한계가 많았는데도 말입니다.”

장 총장은 “일본에 한자문화를 전한 한국이 일본의 한자사전에 의존한다는 사실에 수치심마저 느꼈다”며 “한자를 잘 아는 학자들이 생존해 있는 당대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나중엔 더 어렵다는 생각에 한자사전 편찬을 그때 이미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1967년 단국대 총장에 취임하자 편찬 준비에 들어갔다. 편찬 작업을 담당할 동양학연구소를 1970년 설립했고 이듬해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 선생을 연구소장으로 영입했다.

“일석 선생께선 현역에서 물러나신 뒤라 처음엔 소장직을 고사하셨습니다. ‘대학의 운명을 걸고 추진하겠다’, ‘대학 하나 없어지는 것은 다시 만들면 되지만 이 사업은 세월 지나면 다시 할 수 없다’며 삼고초려 했더니 맡아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업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비용 조달이 문제였다. 재단의 일부 이사들과 교수들은 “사전 만들 돈 있으면 실험 기자재를 하나 더 들여놓자”며 반대했다. 설득을 거듭하면서 오랜 준비 끝에 1978년 편찬실을 본격 가동했지만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장 총장은 “1999년에 겨우 첫 권이 나왔는데 그때까지 연구소가 매년 예산만 타서 쓰고 결과를 내놓지 않으니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목소리가 커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에 집착해 사전을 대강 만드는 것은 만들지 않는 것보다 못한 일이라는 게 편찬팀의 각오였다. 그렇게 해서 16권을 완간하는 데 30년이란 시간과 310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 장 총장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들 줄 몰랐다”고 말할 정도의 큰 사업이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한자 5만5000자를 인쇄할 활자를 만드는 일이었다.

“우리보다 기술이 앞서 있던 일본의 활자 제조업체들이 맡아서 해주겠다며 제안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사전을 만들기로 한 마당에 다른 나라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서울시스템이란 회사와 우리 힘으로 개발하자는 데 의기투합했고 성공적으로 활자를 개발해냈습니다.”

힘들게 만든 사전인데 관심 갖는 사람이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많았다고 장 총장은 말했다. 그는 “1권이 나왔을 때 2권은 언제 나오느냐는 문의가 매일 있을 정도로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고 밝혔다.

16권 완간으로 숙원사업을 이루긴 했지만 장 총장의 욕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목표는 ‘한한대사전’을 토대로 정치 경제 종교 천문 풍속 의학 등 분야별 한자사전을 만드는 것. 일본에 동양학연구소를 설치해 한국학을 일본에 확산시키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한한대사전을 펴낸 것은 다른 연구의 기반을 다진 것일 뿐입니다. 이제 시작인 거죠. 한한대사전의 막대한 콘텐츠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온라인을 통해 보급하는 것도 계획 중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도권을 쥐게 되면 한국이 한자문화 콘텐츠의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장 총장은 일석 선생을 비롯해 뜻있는 학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한자 격언을 하나 들려줬다.

“어머니로부터 어릴 때부터 들은 말 가운데 ‘애금사금 애옥사옥(애金似金 애玉似玉)’이란 말이 있습니다. ‘금을 가까이 하면 금을 닮고 옥을 가까이 하면 옥을 닮는다’는 말로 친구든 스승이든 이웃이든 배울 게 있는 사람을 가까이 두라는 뜻입니다.”

:장충식 명예총장:

△1932년 중국 톈진 출생 △1955년 서울대 사범대 역사학과 수료 △1957년 단국대 정외과 졸업 △1960년 고려대 대학원 사학과 석사 △1971년 대만 문화학술원 문학 박사 △1967∼1994년 단국대 총장 △1980∼1982년, 1984∼1985년, 1989∼1997년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 △2000년 대한적십자사 총재 △2003∼2004년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2008년∼ 단국대 명예총장

△저서 ‘세계문화사’ ‘십팔사략’ ‘위대한 유산을 위하여’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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