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50주년 맞는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

  • 입력 2008년 10월 20일 02시 56분


“쉼 없는 도전 50년… 내 꿈은 아직 미완성”

1958년 인천 중구 용동에서 작은 규모의 산부인과로 출발한 가천길재단이 22일 설립 50주년을 맞는다.

현재 가천길재단은 뇌과학연구소와 암당뇨연구원 등을 갖춘 국내 최고 수준의 대학병원으로 성장한 가천의과대 길병원을 포함해 경원대, 경인일보 등 교육 문화 언론을 아우르는 한국의 대표 공익재단으로 자리 잡았다. 임직원만 무려 5000여 명에 이르는 이 재단은 ‘의료계의 여제(女帝)’로 통하는 이길여 회장이 이끌고 있다. 15일 인터뷰를 위해 찾은 경원대 총장실에서 이 회장은 2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50주년 기념식 참석 대상자 명단을 일일이 챙기고 있었다.

―재단 설립자로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벌써 세월이 50년이나 흘렀네요. 인천에서 처음 병원을 열 때 그 설렘과 벅찬 감동이 아직도 생생해요. 다른 의사들이 하루에 30∼4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면 저는 100∼150명의 환자를 돌보았습니다. 진료를 끝낼 시간이 되면 대기하던 환자들이 병원 문을 닫지 못하도록 몸으로 버텼습니다. 환자들과 함께한 50년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환자가 그렇게 몰려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미국 유학을 다녀온 ‘실력파 여의사’라고 소문이 났던 것 같아요. 가난했던 시절이라 의술이 아니라 돈이 없어 숨지는 환자가 많았어요. 건강보험제도가 없어 병원마다 ‘보증금’을 받고 입원시키는 실정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아예 병원에 ‘보증금 없이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라고 써 붙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무료 진료를 해주다 보니 병원이 사계절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재단의 발전 과정을 정리해 주신다면….

“1970년까지 ‘보증금 없는 병원’, ‘무료진료’로 병원이 알려졌고 1978년 국내 처음으로 여의사로서 의료법인을 만들며 급성장했지요. 1990년대에는 의료 취약지로 눈을 돌려 경기 양평군, 강원 철원군, 인천 백령도에 길병원을 개원했어요. 하지만 가장 비약적인 발전은 1997년부터 진행됐어요. 가천의과대를 설립하고 경원대와 경인일보 등을 인수해 경영하며 재단의 외연을 넓혔지요.”

―50년 전 작은 산부인과를 공익재단으로 발전시킨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저는 평생을 안주하지 않고 도전의 길을, 열정적으로 걸어왔다고 자부합니다. 산부인과가 그런대로 잘되는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길병원이 본궤도에 오른 뒤 일본에 가서 선진 의료기술을 배우고 박사학위를 땄습니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기면 그걸 위해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죠.”

그는 요즘 세계적인 석학들을 잇달아 영입하고 있다. 암,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난치병을 진단할 수 있는 인체영상장치인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장치의 원형을 개발한 조장희 박사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오가와 세이지 박사를 각각 뇌과학연구소 소장과 석좌교수로 초빙했다. 또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평생교수직을 보장한 김성진 박사를 암·당뇨연구원장으로 영입한 데 이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추 박사를 경원대 가천바이오나노연구원 명예원장에 임명했다.

―기초의학 양성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천길재단의 미래동력은 뇌과학연구소와 암·당뇨연구소, 가천바이오나노연구원이 중심축이 될 것입니다. 640억 원을 들여 건립한 뇌과학연구소는 벌써 뇌 속을 놀라운 영상으로 잡아내 외국에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 뇌신경학 교과서가 곧 바뀔 겁니다. 670억 원을 투자한 암·당뇨연구원은 5월 인천 송도 테크노파크에서 개원했어요. 특히 동물실험실은 아시아에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시설입니다. 바이오나노연구원은 미래 과학기술의 주류인 다학제간(多學際間) 융합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저는 한국의 의료 과학 분야에서 특화할 수 있는 비전은 뇌과학과 암·당뇨, 바이오나노에 있다고 확신했고 거기에 ‘다걸기(올인)’했습니다.”

―기념식에서 어떤 구상을 밝힐 것인가요.

“저는 올해를 ‘글로벌 가천길재단’, ‘동북아 허브 길병원’을 추구하는 원년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재단의 모체인 길병원의 경쟁력 강화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길병원에 2009년까지 암센터를 완공합니다. 22층(780병상) 규모로 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최고 수준의 암 치료 전문센터가 될 것입니다. 세계에서 치매, 뇌중풍, 당뇨, 암 환자들이 길병원을 찾아오도록 만들 작정입니다.”

그는 건강하다. 인재 영입과 세계 각국 연구기관과의 공동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수시로 해외 출장을 강행하면서도 끄떡없는 체력을 보여주고 있다. 골프 실력은 여전히 싱글 핸디캡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요.

“걷기를 좋아해요. 지금도 틈만 나면 열심히 걷습니다. 하루에 1시간 이상은 꼭 걸어요. 몸무게가 좀 늘었다 싶으면 집에서라도 트레드밀 위를 걷습니다. 주말 골프는 거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에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생각과 타고난 부지런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계획한 일은 모두 실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도 못 이룬 꿈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렸을 때 커서 의사가 되겠다던 ‘소녀의 꿈’으로 시작한 저의 꿈은 아직도 미완성의 현재진행형이에요. 앞으로 이뤄야 할 꿈이 무한합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하루가 늘 행복하고 보람 있어요. 글쎄 아직 못 이룬 꿈은 결혼이라고 해야 할까(웃음).”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이길여 회장:

△1957년 서울대 의과대 졸업

△1958년 이길여 산부인과 개원

△1978년 의료법인 길병원 설립

△1994년 학교법인 가천학원 이사장

△1998년 가천의과대 개교

△1998년 경원대 인수, 현 총장

△1999년 경인일보 회장

△200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제13회 자랑스런 서울대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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