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씁쓸한 그리고 찡한 모녀의 화해방정식

  • 입력 2008년 10월 18일 03시 00분


◇ 젖과 알/가와카미 미에코 지음·권남희 옮김/144쪽·8500원·문학수첩

오사카에 사는 마키코 모녀가 나의 집에 머물기 위해 도쿄로 온다. 마키코는 나의 친언니이며 그녀의 딸 미도리코는 나의 질녀. 오랜만에 만난 마키코는 생기가 모두 빠져나간 것처럼 쭈그러든 모습에 짙은 화장을 했다. 언니는 오사카 교바 시의 선술집에서 일하는데 손님 접대에서 주방 일까지 온갖 일을 도맡지만 시급직원이다.

조카인 미도리코는 몰라보게 훌쩍 자랐지만 도통 말이 없다. 6개월째 대화 없이 필담만 하는 중이다. 내게도 수첩에 글자를 적어 의사를 표시하는데 그것은 엄마에 대한 반항 때문이다. 이들이 도쿄로 온 이유는 마키코가 유방확대수술을 받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올해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 미도리코와 여성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유방확대수술에 대한 집착으로 해결하려는 마키코가 도쿄에서 머문 사흘간의 이야기다. 작가는 혼자 사는 미혼 여성인 ‘나’의 시각에서 이들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다.

소설 속 여성들의 심리는 얽히고설킨다. 미도리코는 자신에게 찾아오는 신체적 변화가 불쾌하다. 수술을 받겠다고 하는 엄마도 싫다. 사춘기 소녀 특유의 반항심이 엿보이지만 그것은 고달픈 엄마의 삶에 대한 애정과 연민 때문이기도 하다. 마키코가 유방수술의 방법과 종류 등에 집착하는 것도 단지 여성성에 대한 집착 때문만은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현실에서 사라져 버린 삶의 방향성, 생의 한복판에 던져진 존재의 불안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의 갈등은 도쿄에 머무는 마지막 날 밤 절정을 이룬다. 마키코가 10년 전에 떠나버린 전남편, 미도리코의 아빠를 만나고 술에 취한 채 돌아오고 미도리코는 반년 만에 말문을 열며 울음을 터뜨린다.

여기서 이들만의 특별한 화해 장면이 펼쳐진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몸의 변화와 인생의 조건들을 응시해야 하는 일은 슬프고 쓸쓸하지만 소설은 마지막까지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광고용 휴지를 돌리는 남자에 대한 여자 주인공의 상상을 담은 ‘당신들의 연애는 빈사’란 단편도 함께 실려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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