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4번 클릭만으로 최신곡이 ‘내손 안에’

  • 입력 2008년 10월 9일 02시 59분


《그룹 원더걸스의 ‘소 핫’과 빅뱅의 ‘거짓말’ 등 히트곡을 포털 사이트에서 내려받으려면 몇 번을 클릭해야 할까. 네 번이면 된다. 포털 사이트를 통해 누구든지 몇 초 만에 공짜 음원을 내려받아 들을 수 있게 된 세상. 반면 창작자들에겐 몇 개월에 걸쳐 만든 음악이 몇 초 만에 공짜로 뿌려지는 잔인한 현실이 됐다. P2P(개인 간 파일 공유) 사이트와 웹하드를 통한 불법음원 유통경로가 블로그 카페 등 포털 사이트로 옮겨가면서 이를 통한 음원 유출의 피해는 심각해졌다. 2005년 불법음원 단속 건수 중 1.3%에 머물렀던 포털 사이트 내의 적발 건수는 올해 들어 31.5%를 차지했다.<표 참조>》

포털 압수수색 계기로 본 음원 불법유통 실태

검찰은 7일 음원 불법 유통을 내버려 둔 네이버와 다음에 대해 저작권 침해 방조 또는 방치한 혐의로 압수 수색했다. 이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7월 2일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과 다음커뮤니케이션을 같은 혐의로 형사 고소한 데 따른 것이다.

포털 사이트의 불법 음원 유통으로 인해 가요계가 뿌리째 흔들리면서 검찰마저 개입하게 됐다. 포털 사이트의 불법 음원 유통 실태를 알아봤다.

○ 검색에서 다운까지 불과 10초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사이트는 검색 한 번에 무료로 음악을 이용할 수 있는 ‘원 클릭(One Click)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가 음원을 이 사이트에 올리기만 하면 순식간에 무료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포털 사이트들은 “너무 방대해서 규제하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검찰은 포털 사이트가 누리꾼들의 저작권 침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박진영이 작사 작곡한, ‘원더걸스’의 ‘소 핫’을 내려받는다고 치자.

일단 네이버 메인 화면의 통합검색 창에 ‘원더걸스 소 핫 다운’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고 검색 버튼을 클릭한다. 그러면 블로그, 지식iN, 최신뉴스 등 네이버가 운영하고 있는 서비스 카테고리들이 정렬된 화면이 나타난다. 이 화면 우측의 ‘더보기’를 클릭하면 ‘소 핫’을 내려받을 수 있는 블로그 주소(URL)가 좌르르 등장한다. 이 중 하나를 클릭하면 블로그 등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파일이 나타나고 이 파일을 클릭하면 ‘소 핫’이 즉시 개인 컴퓨터로 전송된다. 검색에서 내려받기까지 단 네 번의 클릭만으로 불과 10초 만에 공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포털 사이트가 이 과정을 차단하기만 해도 불법 음원 유통을 막을 수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배포되는 음악 형태도 MP3 파일을 비롯해 뮤직 비디오, 벨소리 형태로 다양하다. 더구나 최근 앨범 발매 전에 음원이 포털 사이트에 사전 유출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올해만 해도 가수 에픽하이, 원더걸스, 자우림, 이효리, FT아일랜드, 넬 앨범의 음원이 발표 직전에 포털 사이트에 올라 순식간에 퍼지며 피해를 봤다.

○ 포털사이트 불법 유통에 무방비

저작권보호센터는 2005년부터 올해 9월까지 포털 사이트 내에서 내려받기, 재생(스트리밍)되는 불법 음원 중 적발되어 삭제된 건수를 집계했다. 그 결과 지난해 포털 사이트에서 삭제 조치된 파일은 134만2000여 건이었다. 하지만 감시망을 피해 포털 사이트에서 버젓이 유통된 불법 음원의 건수는 이보다 최소 수십 배는 많다는 게 게 업계의 관측이다.

저작권보호센터 이재호 음악파트장은 “최신곡이 뜨면 한 시간 안에 수만 개의 블로그 카페를 통해 스크랩 복사되고 있다”며 “정확히 몇 건이 불법 유통되고 피해액이 얼마인지 산정하기가 불가능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포털 사이트가 음악을 검색하고 내려받기 위해 웹하드나 P2P보다 쉬운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별다른 회원가입이나 로그인 절차가 없어도 되기 때문. 소리바다가 합법화되는 과정에서 다른 웹하드와 P2P 사이트 업체들도 유료화나 기술적 보호조치를 취하기 시작한 반면, 포털 사이트는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포털 사이트에 올려진 정보들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다는 점도 단속을 어렵게 만든다.

2007년 12월 발족한 불법음원근절국민운동본부의 박경수 홍보팀장은 “콘텐츠들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상황에서 포털 사이트 측이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어 인터넷 이용자들이 공짜로 정보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범죄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앨범 발매전에 이미 퍼져

내 인생을 도둑맞은 기분”

밴드 ‘자우림’은 6월 2년 만에 앨범을 낼 예정이었으나 앨범의 모든 수록곡이 발매 3일 전에 포털 사이트와 P2P 사이트에 불법으로 올라왔다.

이 노래들은 사이트에 올라오자마자 순식간에 퍼졌고 자우림은 이 노래를 만드는 데 들인 제작비와 창작의 고통 등 유무형의 가치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자우림의 드러머 구태훈 씨는 “유출 경로를 전혀 알지 못한 채 망연자실할 뿐”이라며 “뮤지션에게는 음악이 인생인데, 인생을 빼앗긴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유통, 매니지먼트, 엔지니어, 세션 등 스태프 모두에게 타격을 입혀 제작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행위”라며 “즉시 삭제 등 포털 사이트의 적극적 대처와 자정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3인조 힙합 그룹 ‘에픽하이’는 4월 5집 앨범 발매 예정일 이틀 전에 음원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왔다. 에픽하이의 타블로는 당시 인터뷰에서 “몇 달 동안 가족 얼굴도 거의 보지 못하면서 음악을 만들어 팬들에게 선물하려 했는데 불법 유출됐다는 것을 알고 너무 안타까워 울음이 나왔고 하루 종일 멍했다”고 말했다.

‘원더걸스’의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의 정욱 대표는 “오프라인 음반이 주요 시장인 시절에는 불법 유통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았는데 디지털 환경에선 불법 유통이 정상 유통을 능가할 정도로 커져 피해가 막대해졌다”며 “지금은 많은 회사가 경영이 어려울 정도로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음원 발매 과정에서 방송사 심의실, 뮤직비디오 제작사, 온라인 음원관리 업체 등 많은 곳을 거치기 때문에 최초 유출처도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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