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다크 나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0월 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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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악을 완성시킨다?!
경찰은 도둑을, 도둑은 경찰을 완성시키듯 대립하며 또한 서로를 비추는 빛과 그림자처럼…


《8월 국내 개봉된 영화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는 ‘배트맨’ 시리즈의 여섯 번째 영화예요. 제목에 ‘배트맨’이란 고유명사를 담고 있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죠. 하긴 그럴 만도 해요.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회색도시 ‘고담시’ 시민들은 악당들을 무찌르는 배트맨을 영웅이라 생각하기는커녕 도시를 불안에 빠뜨리는 또 다른 ‘괴물’이라 책망하기 때문이죠. 배트맨은 번뇌해요. ‘난 영웅일까, 아니면 정의를 빙자하는 악당일 뿐일까?’》

역대 배트맨 시리즈 중 가장 사색적이고 절망적인 이 영화는 선과 악에 대한 근원적 고민을 하게 만들어요. 황당한 듯하면서도 치명적인 이런 명제를 우리 눈앞에 던지죠.

‘선(善)은 악(惡)을 완성시킨다.’

아니, 이게 무슨 궤변이냐고요? 얼토당토않은 얘기가 아닐지도 몰라요. 다시 한번 쉽게 풀어 말해볼까요? 이렇게….

‘천사는 악마를 완성시킨다.’ ‘경찰은 도둑을 완성시킨다.’

어때요? 아직도 궤변이라고 생각해요?

[1] 스토리라인

고담시 시민들은 배트맨(크리스천 베일)을 원망하기 시작해요. 범죄를 소탕한답시고 고담시를 파괴하는 악당일 뿐이라는 거죠. 고뇌하는 배트맨. 그는 정의감에 넘치는 고담시 지방검사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가 자신을 대신해 세상을 구원할 진짜 영웅이라고 믿기 시작해요. 낮에는 대기업 회장으로 행세하다 밤이 되면 박쥐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정의를 실현하는 혼란스러운 자신과 달리 덴트는 법을 통해 정의를 집행하는, 그야말로 ‘정의의 사도’였기 때문이죠.

바로 이때 전대미문의 악당이 나타나요. 광대 차림을 한 조커(히스 레저)란 이름의 이 악당은 범죄조직의 두목들을 끌어 모은 뒤 “배트맨을 죽이자”는 제안을 해요. 그런데 이상해요. 조커가 나쁜 짓을 하는 건 돈을 위해서도 복수심을 위해서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어떤 목적도 사연도 없이 그저 세상을 파괴하기를 즐기는 예측불가의 인물이니, 그를 막을 도리도 없을 수밖에요.

결국 조커의 광기에 고담시는 극도의 혼란에 빠져요. 조커는 시민 전체를 인질로 잡고 “배트맨이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면 도시를 폭파시키겠다”고 협박하죠. 아, 분노를 느끼는 배트맨. 그의 내면에선 자신도 모르게 ‘조커를 죽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해요.

[2] 핵심 콕콕 찌르기

자, 쉬운 질문부터 시작할게요. 배트맨은 정의의 화신인가요? 예, 그래요. 배트맨은 위기에 빠진 고담시를 구해내고 정의를 지키죠.

그럼, 두 번째 질문. 배트맨은 법을 지키는 사람인가요? 아, 글쎄요….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악당들을 마구 두드려 패는 행위는 ‘폭행’에 해당되고, 중국 상하이까지 도망친 악당을 끈질기게 쫓아가 잡아와 가둬놓은 건 알고 보면 ‘건물 무단침입’과 ‘납치’와 ‘감금’이니까요. 악당들을 혼내주긴 하지만, 그 누구도 배트맨에게 남의 재산권을 침해하거나 타인을 구타·납치·감금할 권한을 법적으로 위임한 적이 없잖아요?

이번엔 세 번째 질문. 그렇다면 불법적으로 정의를 수호하는 것도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정의(正義)’의 사전적 의미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예요. 따라서 법을 어기더라도 그것이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지켜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정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 마지막 질문. 그러면 배트맨이 아닌, 또 다른 누군가(바퀴벌레맨도 좋고 풍뎅이맨도 좋고 쌀벌레맨도 좋아요)가 홀연히 나타나 “나도 악당을 물리쳐서 정의를 수호하겠다”면서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다면 어떨까요? 그땐 “너희는 안 돼. 배트맨만 그럴 자격이 있어?”라고 할 건가요?

그래요. 이렇듯 정의는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해석될 수 있어요. 정의를 판단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요. 정의를 지키려는 행동이 반드시 법에 따라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다시 말해 ‘법적 정의’가 필요한 거죠.

바로 여기서 배트맨은 치명적인 딜레마와 맞닥뜨려요. 이른바 ‘선악의 딜레마’죠. 선을 추구하다 보니 어느새 스스로 악이 되어버린단 얘기예요. 무슨 뜻이냐고요? ‘힘에는 힘’이란 원칙에 따라 배트맨은 악당들을 혼내주지만,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법의 테두리 밖에서 정의를 수호하는 배트맨의 행위는 ‘응징’이 아니라 ‘범법행위’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죠.

배트맨은 깨달아요. 악당 조커를 증오하면서 심지어는 조커에 대한 살의(殺意)까지 느끼는 자기 자신이 어느새 사람들에게 조커 이상으로 위협적인 괴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단 사실을요. 그래서 그는 이런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겨요.

“영웅으로 죽거나, 아니면 악당이 되어 끝까지 살아남거나.”

맞아요. 영웅의 존재와 악당의 존재는 열혈검사 덴트가 항시 품고 다니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요. 영웅적 행위는, 그것이 법에 따르지 않는 한 언제라도 불법적 파괴행위로 그 가치가 전도될 수 있으니까요. 철학자 니체는 저서 ‘선악을 넘어서’에서 이렇게 갈파했어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심연(深淵)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그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악당과 맞서는 정의의 지킴이는 부지불식간에 스스로 악당의 닮은꼴이 될 수 있단 사실을 기가 막히게 짚어낸 언명이 아닐 수 없어요. 선과 악은 서로 반대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조응(照應)하고 의지하면서 때론 빼닮으려고도 하는 기이한 관계란 말이죠.

아니, 이게 말이 돼요? 선과 악이 서로를 비춘다고요?

흥분하지 말고 찬찬히 생각해 보세요. 악이 없다면 선이 빛날 수 있을까요? 선이 없다면 악이란 개념 자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세상은 선과 악의 치열한 싸움으로 만들어진 절묘한 균형 속에서 유지되는 건지도 몰라요.

생각해 보세요. 배트맨이 악의 무리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하겠다면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결과는 어땠나요? 악당 두목들로 하여금 조커라고 하는 더 강력한 ‘절대 악당’을 끌어들이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었어요.

선을 주장하는 한 악은 사라지지 않아요. 악당 조커는 이런 세상의 원리를 여우처럼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악당답지 않게) 이런 철학적인 대사를 배트맨에게 던지죠.

“You complete me(너는 나를 완성시켜).”

선은 악을 완성시키고, 경찰은 도둑을 완성시키고, 가난은 부를 완성시키고, 여자는 남자를 완성시킨답니다.

▶easynonsul.com에 동영상 강의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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