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붕! 선풍기 스매싱 “용대야 시원하지?”

  • 입력 2008년 9월 10일 08시 59분


“배드민턴의 매력이요? 의도한대로 셔틀콕이 넘어와 스매싱을 성공시켰을 때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엄청난 운동량입니다. 저도 사실 살을 빼려고 배드민턴을 시작했거든요. 대번에 10kg 가까이 빠지더라고요. 다이어트에는 최고죠.”

‘윙크왕자’와의 인터뷰. 이용대(20·삼성전기)는 만약 배드민턴을 안했다면 “뚱보가 됐을 것”이라며 웃었다. “배드민턴 한 번 해보시면 좋을 것 같은데….” 기자의 몸매를 훑어 본 이용대의 한마디. 묵직한 뱃살의 이유는 배드민턴 라켓을 잡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국가대표팀이 연습하고 있는 수원 삼성전기 실내체육관으로 향했다.

○신사의 스포츠

“복장부터 불량이네….” 양말을 살펴본 김중수(48) 감독은 혼부터 냈다. 근대배드민턴을 정립한 사람은 영국의 뷰포트 공작. 귀족 스포츠였던 만큼 에티켓은 필수다.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흰색의 조합을 권한다. 최근 유니폼의 색상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양말과 신발은 흰색의 것을 착용한다.

그렇다면 이효정(27·삼성전기)의 짝짝이 양말 사건은? 베이징올림픽 혼합복식 결승. 이효정은 왼발에 검은색 양말을 신은 것처럼 보였다. 사실, 양말이 아니라 발목보호대였다. 이효정도 보호대 안에는 흰색 양말을 신었다.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 틈을 비집고 끼어들었다. 선수마다 스트레칭 스타일도 다르다. 이용대는 운동을 하면서 몸을 푸는 스타일. “스트레칭은 꼭 필요한 동작만 한다”고 했다. 반면 이용대의 남자복식 파트너 정재성(26·삼성전기)은 “스트레칭을 잘 해야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면서 몸 풀기를 강조했다. 동네 약수터에서 물통 들고 살짝 치는 배드민턴과는 다르다. 순간적으로 뻗는 동작이 많아 근육이 놀라기 쉽다. 정재성이 “초심자들이 가장 많이 다치는 부위는 어깨”라며 기자의 어깨를 잡아 늘렸다. “악.”소리와 함께 코트 안으로 향했다.

○라켓 잡는 데만 30분

“감독님께서 다리 풀리게 해 드리라던데요.” 2004아테네올림픽 남자복식 금메달리스트 하태권(32·삼성전기) 코치가 다가왔다. 일단, 라켓을 잡는 법부터. 웨스턴그립과 이스턴그립이 있다. 웨스턴그립은 라켓을 지면과 수평으로 하고 위에서 바로 잡는다. 라켓을 들면 헤드(망부분)가 바로 정면을 향하기 때문에 포핸드로 셔틀콕을 정확하고 강하게 때릴 수 있다. 하지만 백핸드로 라켓을 돌릴 때 어려움이 있다. 동네배드민턴에서 애용하는 그립.

이스턴그립은 라켓을 지면과 수직으로 해 악수하는 것처럼 잡는다. 라켓을 들면 프레임(망의 테두리)부분이 정면을 향한다. 초보자의 경우 웨스턴그립에 비해 포핸드를 구사하기 어렵지만 숙달되면 포핸드와 백핸드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선수들은 대개 이스턴그립을 사용한다.

금메달리스트 스승은 당연히 이스턴그립을 권했다. 파워가 필요한 단식에서는 손잡이의 아랫부분을 잡지만 빠른 대응이 중요한 복식에서는 상대적으로 위쪽을 잡는다. 일단 컨트롤이 용이하도록 라켓을 짧게 쥐었다. 라켓을 잡기까지만 30분이 걸렸다.

○라켓과 셔틀콕의 부적절한 만남

첫 번째 기술은 하이클리어. 하이클리어는 셔틀콕을 상대 백 바운더리 라인까지 높게 쳐내는 기술. 셔틀콕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다가 백 바운더리 라인 근처에서 수직 낙하한다. 하이클리어는 그 자체로 점수를 얻어내려고 하기보다는 상대를 코트 뒤쪽으로 이동시킨 뒤 다음 기술을 구사하기 위한 목적타다.

네트가 없는 골목길 배드민턴에서 흔히 볼 수 기술, ‘이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했지만 이스턴그립이 속을 썩인다. 라켓 헤드가 정면을 향하려면 손목을 뒤쪽으로 살짝 틀어서 스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부자연스러운 동작. 라켓헤드와 셔틀콕은 부적절한 만남만 지속한다. 계속 빗겨 맞다보니 셔틀콕은 럭비공이 돼 버렸다.

두 번째 기술은 스매싱. 스매싱은 경기를 결정짓는 기술이다. 다른 기술들은 스매싱을 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강한 스매싱으로 소문난 한상훈(24·삼성전기)은 “스매싱은 타이밍”이라고 정의했다. 정점에서 정확한 타점으로 때릴 수 있느냐가 관건. 하이클리어 때 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연이은 선풍기 스윙. ‘적절한가, 부적절한가’를 떠나 라켓과 콕은 만남조차 갖지 못했다. 셔틀콕은 초속에 비해 종속이 크게 떨어진다. 속도가 변하는 셔틀콕과 점프, 그리고 스윙을 일치시키는 것이 문제다.

“그냥 점프하지 말고 쳐보세요.” 하 코치가 결단을 내렸다. 수준별 학습이다. 콕은 라켓에 맞았지만 손목을 꺾어서 공을 내리 찍기가 쉽지 않다. “스매싱이 아니라 푸시 같은데….” 콕이 바운더리 라인을 벗어날 때마다 하 코치의 답답함도 커져갔다.

○위닝샷은 드롭

세 번째 기술은 드롭. 스매싱을 하는 척하다가 힘을 빼면서 치면, 셔틀콕은 상대방 코트 앞쪽으로 힘없이 짧게 떨어진다. 하 코치는 “상대의 자세를 흐트러뜨려 다음 공격을 하는데 용이하고, 직접 포인트 연결도 가능하다”고 했다.

드롭은 야구로 치면 체인지업과 비슷하다. 드롭의 대가 정재성은 “드롭은 스매싱을 예상하며 뒤로 물러나던 상대에게 효과가 있기 때문에 스매싱과 얼마나 똑같은 폼을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어, 그 드롭은 가르쳐드린 기술이 아닌데….” 둔재의 갑작스러운 고난이도 기술에 하 코치가 당황했다. 드롭에는 셔틀콕과 라켓 면이 닿는 순간 라켓을 비틀어서 깎아 치는 타법도 있다. 이 경우 콕은 대각선상으로 떨어진다. 선수들은 일부러 깎아 쳐야 하지만 콕을 정확히 맞추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콕을 빗겨 친다. “이제 주특기는 드롭으로 하십시오.” 최후의 순간, 위닝샷이 정해졌다.

2시간의 훈련 뒤 옷을 벗자 몸이 한결 가벼워 졌다. 묵직한 몸은 땀방울이 돼 옷에 스며 있었다. “콕도 제대로 못 맞추는 학생 만나서 고생하셨습니다.” 머리를 숙이자 하 코치는 “제가 지도력이 부족한 탓”이라며 “지도자로서도 많이 배운 시간”이라고 했다.

확실한 금메달후보가 없던 배드민턴이 금메달·은메달을 딴 원동력으로 김중수 감독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간의 신뢰”를 꼽았다. 그 밑바탕에는 선수 탓을 하기 보다는 연구에 매진했던 코칭스태프의 노력이 있었다. 아테네올림픽이후 주축선수들의 은퇴, 그리고 4년간의 세대교체기. 16개의 깃털이 얽혀 300km/h의 속력을 내는 셔틀콕처럼, 결국 솜털 같던 선수들은 한 몸이 돼 황금빛 스매싱을 날렸다.

수원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수원 | 사진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화보]‘훈남’ 이용대, 난 네게 반했어!

[화보]‘훈남’ 이용대, 한복입고‘대박윙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