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작은 사치… 달달한 행복… 우훗, 디저트!

  • 입력 2008년 8월 22일 03시 01분


한가로운 휴일 오후 스튜어디스 한금희(24) 씨가 직장 동료 3명과 만난 곳은 서울 중구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있는 디저트 카페 ‘페이야드’다.

흐르는 실루엣의 실크 원피스, 페디큐어가 깔끔하게 된 발을 돋보이게 하는 하이힐 등으로 한껏 꾸민 그녀들이 이곳에서 주문한 메뉴는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세트’. 파스텔톤의 마카롱, 연어와 오이를 만 미니 샌드위치, ‘루브르’와 ‘스위트 릴리프(sweet relief)’란 이름의 조각 케이크가 3단 접시 위에 탐스럽게 올라왔다.

자연 채광이 아름다운 이 디저트 카페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여주인공들이 패셔너블하게 디저트를 즐기던 미국 뉴욕 페이야드의 국내 지점으로 웨스틴조선호텔이 운영한다.

한 씨와 친구들은 “우리 이런 디저트, 파리와 뉴욕에서 먹어봤잖니”, “너무 예뻐서 행복해”라며 마치 예술작품 대하듯 ‘경건하게’ 디저트를 음미했다.

한 씨는 “디저트는 예쁜 데다 맛이 달콤해서 피곤과 우울을 잊게 해준다”고 했다.

디저트 문화가 국내에서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디저트가 크게 인기를 끌자 메인 식사 없이 디저트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디저트 카페와 뷔페도 생겨나고 있다. 마카롱, 컵케이크, 타르트, 무스 등 향유할 수 있는 디저트 종류도 다양하다.

○ 브런치 저물고 디저트 ‘뜨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에선 브런치(brunch·늦은 아침식사)가 20, 30대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했다. 주 5일제가 일반화하면서 카페에서 즐기는 팬케이크와 오믈렛 등 브런치 메뉴는 휴일의 여유를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코드였다.

‘늦은 아침’이란 브런치 본래의 뜻에 지나치게 충실한 나머지 당시 브런치 카페를 표방했던 국내 식당들은 오전 10시쯤부터 정오까지만 브런치 메뉴를 내놓았다. 이 때문에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은 휴일 오전부터 분주하게 차려입고 집을 나서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브런치가 대중화된 요즘은 점심식사 시간에 브런치를 선보이는 곳들이 많아졌다. 브런치와 휴일 런치의 경계가 없어진 셈이다.

이런 브런치에 더해 젊은 층은 이제 디저트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가로운 오후에 디저트를 차와 곁들여 먹는 서양식 ‘애프터눈 티’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휴일이나 평일 퇴근 후 친구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는 20대 여성들, 어린 자녀를 영어 유치원 등에 보내고 육아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30대 젊은 엄마들이 요즘 디저트 문화의 주 향유 층이다.

주부 김소영(34) 씨는 “친구들과 디저트 카페들을 찾아다니는 게 일상의 즐거움”이라며 “디저트는 입과 눈이 즐거워 작은 사치를 누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예쁜 자태에 취하고 살살 녹는 맛에 또 취하고

접시 위의 ‘예술품’

○ 호사스러운 디저트의 역사

디저트의 역사는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와 중세 유럽인들은 사냥 때 얻은 천연의 단맛 과일을 먹으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현대적 의미의 디저트는 프랑스어로 ‘치우다’란 뜻인 ‘desservir’란 단어에서 유래됐다. 식사를 마치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동안 자리를 응접실로 옮겨 맛본 음식이 바로 디저트이니 디저트는 태생 자체가 즐기기 위한 과시용 요리였던 것이다.

디저트는 주로 단맛이 강한 과자나 과일이 단골 메뉴였다. 15세기까지만 해도 부자들의 독점품과 다름없어 ‘화이트 골드’로 불린 설탕을 첨가해 사치스러운 성격이 강했다.

일찍이 카페 문화가 발달한 프랑스에선 디저트를 ‘천사의 웃음’이라 칭송하며 공들인 디저트로 기나긴 정찬을 마무리한다. 디저트가 메인 요리와 동등한 대접을 받기 때문에 디저트 장인(匠人)들은 스타 셰프(요리사)로 떠오른다.

홍차의 나라 영국은 또 어떤가. 오후 시간 스콘이나 미니 샌드위치를 곁들여 차를 마시던 귀족들의 사교생활이 널리 퍼지면서 호텔과 식당에는 애프터눈 티세트 메뉴가 즐비하다.

○왜 디저트에 열광하는가

국내 디저트 문화는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제과 분야가 발달한 일본에선 아기자기하고 예쁜 디저트 카페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디저트를 소재로 한 ‘서양 골동 양과자점’이란 일본 만화는 ‘미스터 초밥왕’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국내에서는 공들인 식사를 마친 후 따로 디저트를 챙겨 먹는 게 아직까지 생소한 편이지만 일본의 유명 디저트 카페들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 잡기 어려울 정도로 큰 인기다.

일본 도쿄(東京) 미드타운에 있는 ‘도시요로이즈카(Toshiyoroizuka)’는 요즘 일본인들을 열광시키는 디저트 카페다. 카페 오른쪽 쇼케이스엔 각양각색 디저트가 보석이나 명품 핸드백처럼 진열돼 있고 왼쪽엔 스시 바와 흡사한 디저트 바의 셰프들이 고객 앞에서 디저트를 만들어 서빙한다. 셰프들의 몸짓은 예술행위에 가깝다.

주말 도깨비여행 등으로 일본을 다녀온 젊은 ‘셀카(셀프 카메라)족’들은 예쁜 디저트 카페를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아 블로그와 미니홈피에 올려 정보를 공유하고 확산시키며 국내에 디저트 문화를 빠르게 전파했다. 달콤한 맛의 디저트는 시각적으로도 훌륭한 ‘아트 오브제’이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이들은 ‘How I met your mother’ 등의 드라마에 소개되는 뉴욕의 컵케이크 전문점들을 서울의 디저트 카페처럼 가깝고 친숙하게 느끼기도 한다.

디저트의 주요 특징인 단맛도 디저트 열풍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된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박재은 씨는 “초콜릿에 함유된 페닐에틸아민, 카카오에 들어있는 폴리페놀 등은 먹는 순간 뇌를 이완시키고 기분을 좋게 만들기 때문에 당분이 주 재료인 디저트는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들의 일상에 활력을 준다”고 말했다.

○서울의 고급 디저트 카페들

파리크라상, 파리바게트, 배스킨라빈스 등을 거느린 SPC그룹이 지난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사옥 1층에 문을 연 ‘패션 5’는 ‘디저트 갤러리’를 표방한다.

세련된 검은색 인테리어도 감각적이지만 프랑스에서 수입하는 밀가루와 식재료를 사용한 각종 디저트는 국내 제과 제빵 종사자들이 입을 모아 고품질을 인정한다.

바움쿠헨(나이테 모양의 케이크)을 만드는 과정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다. ‘여름 한입 가득’ 등의 이름이 붙은 케이크들은 탄탄한 구조를 갖춘 작은 건축물 같은 모양새로 화려한 쇼케이스 안에 진열돼 있다.

수제 초콜릿, 푸른색 펠트지로 고급스럽게 포장해주는 각종 수제 과일잼, 예쁜 용기에 담긴 푸딩…. 이곳의 푸딩 용기는 집으로 가져가 양념통이나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는 고객도 많다.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는 매일 오후 2시부터 밤 12시까지 초콜릿 뷔페를 운영한다. 암석처럼 큰 덩어리로 썰어놓은 다크 초콜릿, 피스타치오를 넣은 화이트 초콜릿, 타원형 페이스트리 위에 초콜릿을 번개 모양으로 얹은 에클레르 등 각종 초콜릿과 마카롱을 차와 함께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앞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의 지하 북카페 ‘마당’은 고급스러운 디저트로 명성이 높다. 에르메스 식기에 서빙되는 사과 타르트, 아이스크림을 얹은 초콜릿 수플레 등을 맛보며 300여 권의 책을 즐길 수 있다.

○컵케이크, 와플, 타르트…디저트 전문점들

용산구 이태원동에 문을 연 홈메이드 컵케이크 집 ‘라이프 이즈 저스트 어 컵 오브 케이크’는 디저트 마니아들에게 알음알음 인기다. 맛도 맛이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민 흰색 인테리어도 화제.

이곳의 이샘(27) 사장은 취미로 시작한 홈 베이킹에 푹 빠져 다니던 광고대행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냈다. 그는 “컵케이크는 어려운 레시피가 필요 없이 질 좋은 버터를 작은 컵에 가득 담아 구우면 되는 소박한 디저트”라고 말했다.

이 밖에 프렌치 디저트 카페인 강남구 신사동 ‘미얌미얌’은 프랑스식 가정집 인테리어에서 즐기는 도톰한 와플이 일품이며, 신사동 가로수길의 ‘두크렘’은 타르트 전문점이다.

뚜레쥬르도 최근 송파구 방이동에 프리미엄 베이커리 콘셉트의 ‘카페 뚜레쥬르 올림픽공원점’을 냈다. 현장에서 조리해 기존 뚜레쥬르보다 업그레이드된 차별을 꾀한다.

디저트는 접시 위에 펼쳐지는 한 편의 공감각 예술이자, 식사라는 인생 드라마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달콤한 디저트 한 접시로 잠시 시름을 잊고 유쾌해질 수 있다면 천국이 따로 없으니, 각박한 세상에서 디저트는 더욱 사랑받을 듯하다.

글=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사진=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지면 디자인=박초희기자 choky@donga.com


▲영상 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미옥 기자


▲영상 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미옥 기자


▲영상 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미옥 기자


▲영상 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미옥 기자


▲영상 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미옥 기자

■ 집에서 만들어보세요

호텔의 맛을 내 손으로

맛있는 디저트를 집에서 만들어보면 어떨까. 신라호텔의 마카롱, 웨스틴조선호텔의 바나나 타르트 조리법을 소개한다.

▽마카롱 만드는 법(지름 3.5cm 마카롱 40개 기준)

① 아몬드 분말 280g, 슈가 파우더 280g, 녹차가루 30g을 섞는다.

② 달걀 흰자 200g에 설탕 80g과 슈가파우더 130g을 넣어 거품을 낸 뒤 ①에 섞어 되직한 반죽을 만든다.

③ 실리콘페이퍼 위에 각각 지름 2.5cm의 원형 모양으로 ②를 짠다.

④ 오븐에서 135도로 17분 동안 굽는다.

⑤ 녹차가루, 초콜릿, 끓인 생크림과 버터를 섞어 만든 가나슈(초콜릿 크림)를 구운 반죽 두 장 사이에 바른 뒤 겹친다.

▽바나나 타르트 만드는 법(15인분 기준)

① 슈가 타르트 반죽을 은박지로 감싼 뒤 바나나 한 개를 얇게 썰어 반죽 안에 넣는다.

② 중탕으로 끓인 버터 200g, 설탕 160g, 계란 240g을 섞어 타르트 반죽 안에 따른다.

③ 오븐에서 180도로 25분 동안 굽는다.

④ 커스타드 크림 믹스 170g과 물 400g, 럼주 조금을 섞어 구운 반죽 위에 짜 올린다.

⑤ 살구잼에 물을 넣어 끓인 뒤 ④위에 바르면 윤기가 난다.

(도움말: 신라호텔 이의범 셰프, 웨스틴조선호텔 전광일 셰프)

■ 인기있는 디저트 10종

못 먹어보면 후회해요

국내에서 최근 인기를 얻는 디저트 10종을 소개한다. 친숙하지 않은 메뉴가 많지만 이 정도만 알고 있으면 더 자신있게 디저트를 주문할 수 있다.

①마카롱=달걀 흰자, 설탕, 아몬드 등 견과류를 섞어 작고 둥글게 구운 과자. 본래 발상지는 이탈리아지만 프랑스에 전해져 프랑스 낭시 지방의 마카롱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② 타르트=얕은 원형 틀에 반죽을 깔고 과일이나 크림을 채워 구운 과자.

③ 컵케이크=컵케이크 틀 또는 주름잡힌 종이 케이스에 반죽을 담아 구운 케이크. 마시멜로, 버터크림 등을 넣어 빵을 만들고 과일과 호두 등을 위에 얹는 게 정통 영국식이다.

④ 수플레=으깬 과일이나 크림에 머랭(계란에 설탕을 더해 거품 낸 것)을 넣어 구운 디저트. 프랑스어로 ‘부풀리다’란 뜻으로 달걀 흰자에 함유된 공기가 오븐에서 열을 받아 팽창한다.

⑤ 무스=거품 상태의 가벼운 과자. 부드러운 과실액에 거품 낸 생크림 또는 계란 흰자를 더해 가볍게 부풀린 디저트.

⑥ 푸딩=계란, 설탕, 우유 등을 섞어 중탕하면서 구운 것. 육류, 과일, 밀가루, 야채, 빵을 섞어 찌기도 한다.

⑦ 밀푀유=얇게 구운 반죽 사이에 커스터드 크림을 바르고 윗면에 설탕을 뿌린 프랑스 과자. 층상구조가 겹겹이 쌓인 낙엽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⑧ 마들렌=비스킷 반죽을 작은 조개 모양으로 구운 프랑스의 대표적 과자.

⑨ 바움쿠헨=단면이 나무의 나이테 모양인 독일 과자.

⑩ 갈레트=발효 반죽을 동그랗고 납작하게 만들어 구운 프랑스 과자.

참고자료: 빵·과자 백과사전(비앤씨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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