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선생 유고 ‘일본산고(日本散考)’<3>동경까마귀

  • 입력 2008년 7월 18일 09시 08분


<3> 동경까마귀

여유작작하다/사람사는 언저리 아니면 못사는 주제에/사람의 눈치쯤 아랑곳 없이/정거장 둘레를 어슬렁거리다가도/지갑을 줍듯 먹어만 보면/스윽 달아난다.

章湖 시인의 詩集 <동경까마귀> 속의 시 한구절이다.

일본에는 까마귀가 많다고 한다. 소설이나 시(俳句)에도 까마귀는 곧잘 나타난다. 유행가, 동요, 심지어 자장가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을 보면 우리들처럼 혐오감으로 그새를 대하지 않는 모양이고 그들 정서 속에 녹아들어 있는 듯 보인다. 우리민족의 정서를 은근과 멋이라고들 하는데 자연스럽고 그윽하고 점잖은 것으로 은근을 풀이하며 멋은 덴디즘의 외형, 형식과는 다르게 정신적인 사치스러움과 해학도 포함되어 있지 않나싶은데 따라서 여유가 있고 낙천적이며 공간지향 동적인데 비하여 쓸쓸하고 상심의 뜻을 가진 와비(¤)와 쓸쓸하고 한적한 뜻의 사비(寂), 숙명적이며 허무한 모노노아와래(物の哀れ), 語意의 설명이 미흡하겠지만 대체로 그렇게 집약되는 일본인들의 정서에는 짙은 우수와 허무주의가 깔려있다. 그리고 감상주의의 소지이기도 하며 정적이요 평면, 그러니까 지상 지향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어둡다. 해서 枯天에 앉은 겨울까마귀는 그들 정서의 근사치며 우리의 경쾌한 새타령이 주는 느낌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림장이 이중섭은 일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 민둥산 붉은 흙을 비행기에서 내다보고서/ 눈물이 나더라고 말했지만/ (중략) 부산 영주동 까치집이 내다보이는 우리집에 와서도 그랬고/ 정릉 골짜기 까치집이 있는 하숙집에서도 그랬듯이/ 까치만 쳐다보면 늘 그는 입을 반푼이처럼 헤벌레하고 있었겄다. ('까마귀에 쫓겨온 이중섭')

까마귀와 까치의 대비는 민족과 민족간의 숨막히게 다른 뉴앙스를 느끼게 하지만 화가 이중섭의 개인적 고뇌, 민족적 슬픔, 내 강산에 대한 짙고 애틋한 애정이 느껴져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일제하에서 살아본 사람이면 내 자신의 눈물 내 자신의 모습으로 착각하게 되는 구절이다.

조국을 잃었다는 것은, 孤兒가 된것과 다를게 없다. 내 幼年時節 떼지어 다니던 걸인들의 비참한 모습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倭人들에게 농토를 빼았기고 고향에서 쫓겨난 農民들의 行路가 걸인이었던 것이다. 부둣가에는 팔장 낀 지개꾼들이 그야말로 그리운 님 기다리듯 짐실은 배가 들어올 항구를 바라보고 서있던 풍경도 눈앞에 선하다. 다만 따뜻하게 되살아나는 것은 그 시절, 웬만하면 거지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던 人心이다. 우리 모두가 헐벗은 것 같은 기분, 굶주린 것 같은 허기, 보호받지 못한다는 불안, 바람벽에 서 있는 것 같은 세월이었다. 그것은 바로 고아의 세계다.

옛날 서울 정릉에 살았을 때의 일이다. 산동네여서 일꾼들을 불러다가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은 일이 있었다. 노가다로 이골이 난 그들은 목도질도 장단을 맞춰 흥얼거려가며 슬렁슬렁 움직이는 것 같았으나 일이 오달지고 뒷마무리도 튼튼했다. 일하면서 주고받는 그들 대화를 듣자니까 징용 가다가 도망친 얘기였다. 장정들이 모인 경찰서 마당에서 허술한 틈을 타 튀었다는 것이다. 조선인 순사가 쫓아오는 신작로를 죽으라고 뛰는데 마침 길가에 서 있던 약국집 주인이 우연인척 순사의 다리를 걸었고 순사는 나자빠지더라는 것이다. 그 새 뛰어든 곳이 공교롭게도 막다른 골목이어서 엉겁결에 담을 뛰어넘었는데 괜찮게 사는 집의 뒷뜰이었으며 그집 식솔들이 숨겨주어 하루 밤을 지새고 보니 일본은 항복을 했더라는 것이다. '왜놈들 그때 손 안 들었으면 사람 많이 다쳤을끼라.'

약국주인과 숨었던 집의 식솔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다른 일꾼들은 징용에 갔다 왔는지 목검이 아프다, 아니 총대가 더 아프다 또 뭐, 뭐가 더 무섭다 하면서 살점이 문적문적 묻어난다 뼈가 바스라진다는둥 험악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들의. 표정이었다. 증오와 원한이 없었다. 때론 웃고 익살스런 몸짓을 하며 일하는 것처럼 슬렁슬렁하는 말투가 그렇게 한가할 수가 없었다. 돈 받고 대신 매를 맞은 흥부며 매를 맞으면서 일일이 사또한테 대거리하는 春香을 생각했다. 절박한 상황의 春香이야 모질고 독한 女子였지만 남정네들은 흥부나 일꾼들이나 턱없이 느슨하다. 樂天이랄까 해학이랄까 그런 것이 숨겨져 있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바로 그런 것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을 것이며 또 바로 그런 낙천적 해학이 갖는 여유 때문에 끝내는 회생하여 이 민족이 망하지 않고 긴 세월 존속돼 온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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