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자국이익 지속적 확대… 장기전 대비 국제공조 연구를”

  • 입력 2008년 7월 16일 03시 01분


일본 정부가 중학교 사회교과서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사실상 자국의 영토로 명기한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이 15일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왼쪽부터 허동현 학장, 정재정 교수, 홍성근 연구위원. 김미옥 기자
일본 정부가 중학교 사회교과서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사실상 자국의 영토로 명기한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이 15일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왼쪽부터 허동현 학장, 정재정 교수, 홍성근 연구위원. 김미옥 기자
■ 긴급좌담 - 독도 대처 어떻게

“과거 문헌이나 지도상의 기록을 근거로 하지 않더라도 한국은 일본에 앞서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해 왔다. 1872년 고종은 독도에 관리를 파견했고, 1900년대 초반에도 조사관이 파견됐으며, 1940년대 미군정 때도 한국이 독도를 실질적으로 관리했다. ‘현상의 사실상태’를 따지면 한국이 유리한 입장이다.”(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일본의 노림수는 독도 문제를 영토 분쟁 문제로 만들어 독도 문제에 큰 관심이 없는 일본의 보통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앞장서서 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키울 필요는 없다.”(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

“이 문제는 독도 문제로만 국한해서 볼 일이 아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이면서도 지배층에 고스란히 남은 일본의 우익 세력이 어떤 태도를 유지해 왔는지, 동북아 정세가 어떻게 변했는지, 한국과 미국 일본 사이의 동맹 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등 다양한 측면으로 짚으면서 따져봐야 할 사안이다.”(허동현 경희대 국제캠퍼스 학부대학 학장)

일본 정부가 중학교 사회과의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한 것에 대해 한일 근대사 및 일본 교과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의주로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실에서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홍성근 연구위원, 정재정 교수, 허동현 학장은 이번 사안의 배경과 전개 방향을 논의하고 한국 정부와 민간의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홍성근=일본의 현행 교과서들은 러시아와 분쟁 중인 북방 4개 섬에 대해선 드러내놓고 일본 영토로 기술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반환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명기하고 있다. 교과서 서술과 제작의 지침이 되는 이번 해설서가 나옴으로써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 교과서들의 서술도 노골적인 방향으로 갈 것이다. 언젠가는 ‘일본 정부가 독도의 반환을 요구 중’이라는 대목이 교과서에 명기될지 모를 일이다.

▽허동현=이번 일은 일과성 사건이 아니다. 일본의 우익 전범 세력이 태평양전쟁 패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용인으로 살아남은 데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조용히 있던 우익 세력이 냉전 체제가 종식되자 1997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을 결성하는 등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냉전 때는 미국이 한국과의 동맹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한국을 자극하지 못했지만 더는 그럴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오늘날 일본은 한국보다 더 중요한 미국의 정치 경제 파트너다.

▽홍=교과서를 살펴보면 특히 2000년대 이후 이런 양상이 두드러진다. 일본의 교과서들은 지도에서 독도에 다케시마(竹島)라는 이름을 붙이더니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경계선을 그어 독도를 자국 영토로 분류했다. 그런 뒤에는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주장하는 표현들을 본문에 삽입하기 시작했다. 2001년에 나온 ‘일본서적신사’ 출판사의 중학교 지리 교과서에는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일본해(日本海)의 다케시마를 둘러싼 문제가 있다’는 대목이 본문에 등장한다.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 교과서의 기술은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정재정=2000년대 들어 국가들 사이에 바다 속 자원을 노린 ‘해양주권’ 다툼이 더욱 심해진 것도 이런 경향을 부채질했다. 이런 배경과 동북아 정세의 흐름을 볼 때 일본이 이런 해설서를 낼 것이라는 점은 예상됐던 사안이다. 정부도 이를 예측했을 텐데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 궁금하다.

▽홍=한국은 독도 문제를 ‘역사 서술의 오류’라는 ‘역사 문제’로 국한시키려 하지만 일본은 이를 ‘영유권 문제’로 확대시킬 속셈을 내비치고 있다. 이런 속셈을 노골화한 교과서가 나오게 되면 독도 문제의 본질에 대한 한일 양국 국민의 시각차는 더욱 커지게 된다.

▽정=그렇다. 일본은 전쟁 이후 줄곧 ‘패전의 역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국민의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는 역사인식을 자주 표명했다. 보통의 일본인들을 고무시키려는 의도였다. 독도 문제만 하더라도 시마네 현을 비롯한 일부 지역민을 제외하면 대다수 일본인들은 별 관심이 없던 사안이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질지 모른다.

▽허=문제는 일본 우익 세력의 힘이 갈수록 커진다는 점이다. 우익은 자국의 교과서 기술 태도를 계속 공격해 왔는데 2001년, 2006년에는 직접 교과서를 쓰기도 했다. 후소샤판 교과서다. 그런데 이것이 시민사회의 반대에 부닥치자 문부성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교과서 집필자나 출판사는 더욱 압박을 느낄 것이고 이번 해설서는 상당한 구속력을 발휘할 것이다.

▽홍=일본 국내 문제이므로 감 놔라 배 놔라 식의 직접적 대응은 하기 어렵다. 이 문제는 또 장기적으로 대응해야 할 문제다. 일제의 한국 강점에 대한 사실적 조명 작업을 통해 국제사회에 포괄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게 중요하다. 독도만 떼어내 얘기하면 영토 분쟁으로 비쳐 불리할 수도 있다.

▽정=옳은 얘기다. 한국에선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독도를 강탈해 갔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일본은 합법적인 조약을 통해 한국을 병합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대한 해석에 따라 독도 문제도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물론 학계가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점이다.

▽허=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연구 수준 차이다. 독도 문제만 보더라도 한국과 일본은 연구 인력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그나마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이 관련 사료를 발굴해서 우리를 도와주니까 한국이 이만큼이라도 버티고 있다.

▽정=한국과 일본이 국력을 총동원해서 싸울 문제는 아니다. 또 한일 양국의 역사 갈등은 뿌리가 깊기 때문에 일거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물밑 교류가 더 효과적이다. 특히 민간 차원의 노력이 중요하다. 학자들로서는 사료를 발굴하거나 새로운 해석으로 논리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사편찬위원회나 동북아역사재단 같은 국가기관에 독도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두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와 병행해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같은 형태로 한일 간 역사 교류를 계속 진행해야 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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