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硏 통폐합 어떻게…” 대덕단지 연구자들 불안감

  • 입력 2008년 6월 27일 03시 12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에서 책임연구원을 맡고 있는 한 40대 후반의 박사는 요즘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올해 4월 15일 KAIST와 생명연 통합 문제가 처음 불거진 뒤 줄곧 그랬다. 대학에 비교하면 부교수급인 그는 얼마 전 동료들과 난생처음 거리로 나섰다.

그는 “과학자의 길을 걸은 지 15년 만에 처음으로 하는 경험”이라고 했다. 그와 동료들은 벌써 40여 일째 두 기관의 통폐합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기자가 대전을 찾은 25일에도 KAIST 정문 앞에서는 20여 명이 두 기관의 통합을 반대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KAIST 생명연 통합’ 추진과 기관장 일괄 사표 제출로 시작된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 개편 작업은 최근 대통령비서진과 장관 교체의 분위기 속에서 그 진행이 더뎌지고 있다. 대전에서 만난 20대 비정규직부터 40, 50대 고참까지 연구자들은 연구를 계속하면서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통합이 추진되고 있는 핵융합연구소는 당장 지난해 완공된 한국형핵융합실험장치 ‘KSTAR’를 운영할 인력을 뽑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한 연구자는 “기관장 임명이 계속 보류되면서 중장기 계획을 구상하기는커녕 당장 올해 연구에 필요한 인력 구조도 재편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연구자는 “조직이 통합된다고 하니 올해 어떤 연구를 해야 할지 판단 내리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생명연의 한 연구자는 “해외에서 학위를 받고 출연연으로 오려던 박사가 계획을 바꿔 현지에 남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대덕지역 연구자들의 모임인 연구발전협의회 조성재 회장은 “정부의 추진 방식이 불명확해서 연구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장순흥 KAIST 부총장도 “출연연 통합과 개편에 대한 정부의 모호한 태도가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박문수 박사는 “출연연의 대다수 연구자는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면서도 “정부가 연구자들의 자체 개혁안을 진지하게 듣고 이를 바탕으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