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미은]다른 의견도 존중해야 문화국가다

  • 입력 2008년 6월 11일 02시 58분


민심은 무서운 것이다.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정부도 국민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다. 이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을 딛고 압도적인 표차로 탄생했기에 자신감에 넘쳐서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데 소홀했다. 내각과 비서진 인사를 할 때나 대운하 추진을 타진할 때나, 우려하는 국민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취임 100일 만에 거리 가득히 촛불을 든 시민들이 쏟아져 나온 상황이 된 데에는,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 탓이 크다. 권력을 쥔 측에서 이런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거리 두기’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남에게 생긴 일은 제3자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일이 되면 ‘거리 두기’가 안 돼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게다가 심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집단사고(group-think)’의 위험도 있다. 집단사고는 집단 안에서의 조화가 더 중요시되면서, 집단 내 사람들끼리 논쟁을 통해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기보다는 쉽게 한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집단 안에서 비판적인 의견 제시를 암묵적으로 억압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오류가 발생해도 계속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현상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가 설명한 이론인데, 이런 집단사고의 폐해는 역사적으로 많이 일어났다. 촛불시위에 대한 청와대의 대책이 계속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도 이런 집단사고의 영향일 수 있다.

집단사고의 증후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자신이 속한 집단은 취약하지 않다고 여기면서 집단의 도덕성을 과대평가한다. 집단의 결정을 합리화하고, 상대편에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또 반대자에게 동조압력을 가한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반대의견을 내지 못하도록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만장일치의 착각에 빠지기 쉽고, 반대정보를 차단하는 구성원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것들이 그 증후에 해당한다.

사회심리학에서 ‘잘못된 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회가치로 간주하고, 남들도 내 의견과 같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오류를 말한다. 자신의 행동을 보편화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사회적 인정을 받으려는 의도가 포함된다. 이와 비슷한 ‘투사(projection)’ 현상도 있다. 투사는 자신의 의견이나 성향을 다른 사람에게 비추는 경향이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의견을 ‘투사’하고 ‘잘못된 합의 효과’를 일으키면서 ‘집단사고’로 나아갈 때 위험은 크다. 특히 그런 방식의 의사결정이 중요한 자리에 있는 엘리트 집단에서 일어난다면 그 위험은 더 크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 미만으로 내려가고, 촛불이 연일 타오르는 과정에서 단순히 과학적인 확률에 기댄 ‘해명’으로 일을 해결할 수는 없다. ‘안전’은 과학적인 확률의 문제이지만, 국민이 느끼는 ‘안심’은 심리적 보호막을 정부가 제공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안심할 수 있는 근거를 주지 못하면서 배후세력 탓만 해가지고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는 분명히 필요하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전제로 다른 의견을 들어주는 관용이 필요하다. 인터넷에서 다른 의견에 대해 심한 욕설을 하거나 1인 시위에 대해 위협을 가하는 등의 행태는 자제가 필요하다. 비판은 날카롭게 하되, 내 주장을 하는 만큼 귀를 열어놓고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하다.

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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