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따라잡기]‘기본 4만부’ 오쿠다 히데오의 내공

  • 입력 2008년 5월 10일 02시 58분


간결하게… 일상서 살짝 벗어나게…

출판과 문학을 담당한다니 학교 선배가 한마디했다.

“그럼, 지면에 일본소설 많이 소개되겠군.”

뭔 소리냐고 하자 당연한 되물음이 온다. “원래 그런 ‘감각 소설’ 좋아하지 않아?”

일본소설은 대단하다. 출판계는 불황이라고 하는데, 젊은 층의 인기가 그칠 줄 모른다. 1990년 초반 미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몰라 ‘왕따’ 당했을 때부터 줄곧. 무라카미 류,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마치 한 스테이지를 넘어가면 더 센 괴수가 출현하는 것 같다. 일본산 롤플레잉게임처럼.

최신 괴물은 ‘오쿠다 히데오’다. 2005년 ‘공중그네’(은행나무)부터이니 신선하진 않다. 그런데 위력은 갈수록 거세다. 공중그네는 지금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맴돌며 60여만 부가 나갔다. ‘남쪽으로 튀어’도 15만 부가 넘었고, ‘마돈나’ ‘걸’(북스토리)도 각각 6만∼7만 부다. 장편 단편 구분도 없다. “오쿠다 소설은 못해도 4만 부 이상”(주연선 은행나무 대표)이다.

아이템 장착은 또 늘었다. ‘스무 살, 도쿄’(은행나무)와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북스토리)가 이번 주 동시 출간됐다. ‘팝스타 존의…’는 1998년 작가의 데뷔작. ‘스무 살…’은 특유의 유쾌함을 살린 청춘 소설이다. 서점가에선 예약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난리일까. 그저 감각소설이려니. 선배의 말대로 선입견 때문에 ‘거시기하게’ 취급했다. 읽은 적 없으니 말하기도 어려웠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여름언덕)을 쓴 피에르 바야르처럼 할 수도 없고. 일단 마룻바닥에 쌓아놓고, 베개 끼고 누워 ‘살펴본’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①만화 같은 표지=손이 가는 데 거부감이 없다. 표지만 봐도 일본소설이고 오쿠다 히데오인지 안다. 마케팅에서도 ‘동일한 이미지의 연장’은 근사한 전략이다. 게다가 핸드백에도 쏙 들어가는 적당한 두께와 크기.

②단문의 향연=‘원 샷 원 킬(One Shot, One Kill).’ 명확하고 편안하다. 어떤 소설들은 문장이 너무 길어 애를 먹이는데…. 몇 장씩 할애해 책을 덮게 만드는 배경 설명도 없다.

③소시민적 영웅=이라부(공중그네), 아버지 이치로(남쪽으로 튀어), 히사오(스무 살, 도쿄)까지. 하나같이 대단하지 않다. 특이해도 낯설진 않다. 그런 그들이 삶은 유쾌하다. 최소한 어둡진 않다.

④현실의 판타지=젊은 후배직원을 향한 연모나 공무원 앞에서 대놓고 야료하는 것들이 나온다. 현실에선 힘든 일탈이 펼쳐진다. 그렇다고 공상과학소설(SF)이나 첩보물처럼 뜬금없진 않은, 뻔한 일상에서 살짝 비켜서는 즐거움을 준다.

물론 작가에 대한 평가는 천차만별이다. 감각소설이란 표현도 문학적 깊이와는 별개라는 말이다. 하지만 왠지 그 ‘감각’이 무섭다. 마흔에 데뷔했는데 젊은 취향을 잃지 않는 작가의 감각. 어떤 소설도 자기만의 색깔을 발휘하는 일본문학의 감각. 소설이든 만화든, 심지어 포르노도 다양한 장르와 취향이 공존하는 감각. 그런 것들이 어우러지며 일본 문화는 세계에서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오쿠다 히데오, 그 다음 괴수는 누구일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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