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표심… 與도 野도 맘껏 웃지 못했다

  • 입력 2008년 4월 10일 02시 59분


쏠린 눈서울 지하철 3호선에 탄 승객들이 9일 오후 객차 내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방송사들의 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쏠린 눈
서울 지하철 3호선에 탄 승객들이 9일 오후 객차 내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방송사들의 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18대 총선의 결과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것은 ‘절반의 성공’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19일 이루어진 10년 만의 정권교체는 비로소 완성됐다. 한나라당의 과반수 확보는 민주화 과정에서 정치적 혼돈을 거듭한 ‘87년 체제’에 종언(終焉)을 고하고 선진화로 나아갈 정부의 탄생을 예고한다. 이번 총선을 통해 이른바 ‘3김’이 정치세력으로서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했다는 점도 이런 체제 전환과 무관치 않다. 특히 3당으로 부상한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 친박계 무소속 등 보수세력을 합치면 원내 200석을 넘는다. 완벽한 공조가 이루어진다면 개헌까지 넘볼 수 있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차지하는 등 진보세력이 의회를 장악했던 점을 돌아볼 때 의회 권력이 보수세력으로 재편된 셈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불안한 과반수’로 출발하게 된 것은 ‘절반의 실패’에 해당한다. 역사상 가장 많은 표차로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킨 민의는 한나라당에 ‘안정 과반수’를 주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국회 내 상임위원회 장악을 위해 무소속 인사 영입에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먼저 정치색이 없는 순수 무소속을 영입하려 하겠지만, 문제는 한나라당의 영입 대상이 될 보수 성향 무소속 대부분이 친박근혜 전 대표 계열 인사라는 점. 결국 한나라당 내 친박 계열 목소리가 커지면서 또다시 친이명박 대통령 계열과 친박 계열 사이에 유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18대 총선의 민의는 지난 대선 때와 다르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대선에 담긴 국민의 뜻은 ‘이명박이 좋아서가 아니라 노무현이 싫어서’로 집약됐다. 노무현 정부의 이념과 편 가르기, 무능과 비능률에 질린 국민이 ‘일 잘하는’ 이명박 후보를 사상 최대 표차의 대통령으로 뽑아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과반의석을 준 것도 한나라당이 예뻐서가 아니다. 좌파정권 10년의 적폐를 털어내고 미래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이명박이라는 ‘머리’에 ‘과반수 여당’이라는 손발을 달아주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은 한나라당에 과반수에 턱걸이하는 의석만을 넘겨줬다. 전국 단위 역대 사상 최저 투표율에서 민심의 흐름이 묻어 나온다. 야당을 찍어 국정의 발목을 잡게 할 수는 없지만, 한나라당을 찍자니 뭔가 석연치 않은….

연이은 대선과 총선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실패의 반사이익을 얻는 것은 여기까지일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제부터는 일로, 정치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벌써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국정개혁에 드라이브를 걸 리스트를 작성해 장전해 놓았다고 한다.

공공기관 민영화, 공무원 체질 개선 및 연금개혁은 역대 어느 정권도 해보지 못한 금단(禁斷)의 영역이다. 어린이와 여성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지만 그동안 소홀히 다뤄온 게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은 “치안과 질서를 다잡지 않고서는 ‘경제 살리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고금의 교훈”이라고 말한다. 특히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의자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전 정권의 잔존 세력에 한나라당의 과반의석 확보는 심리적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밖으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시발로 한 한미동맹 복원이 발등의 불이다. 남측에는 ‘선물’만 받고, 정작 중요한 대화는 미국과만 하려는 북한식 통미봉남(通美封南)의 기를 살려준 햇볕정책으로 왜곡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일도 시급하다. 국민적 합의가 뒷받침돼야 하는 이런 일들에는 대의기관인 국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당분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이 같은 당면과제에 드라이브를 걸기에 유리한 국회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제1야당인 통합민주당의 대여 견제력이 급속도로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을 견제하려 해도 연대할 세력이 마땅치 않다. 개헌 저지선 확보에 실패한 데다 대선과 총선 패배 책임론을 따질 정동영 전 대선후보와 손학규 대표의 낙선으로 당장 당권 투쟁 모드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민주당에는 6, 7개의 계파가 혼재해 있다. 경우에 따라선 조기 전당대회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기 전대든, 7월 전대든 민주당 안팎에선 지금의 당을 그대로 끌고 나가서는 ‘미래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다. 이명박 정부 조각(組閣) 과정의 잡음과 한나라당 공천 실패의 과실을 받아먹을 수 없는, 사실상 ‘불임 정당’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당 밖보다는 오히려 당내 상황이 녹록지 않다. 당내에서만 친이명박계와 물과 기름인 친박근혜계가 30여 석을 얻었다. 게다가 당내의 친박 세력에 원심력으로 작용할 친박연대 및 친박 무소속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당내의 친박 계열 당선자까지 포함하면 60여 명이 박근혜 계열이다.

더구나 한나라당에는 7월 전당대회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박 전 대표의 행보에 따라 친이와 친박의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한나라당 안팎의 친박 세력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여기에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이 동조한다면 정국은 다시 한 번 요동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불안한 과반수’가 된 것은 공천 실패 탓이다. 압도적으로 많은 친이 계열이 공천됐지만, 친박 후보가 탈락한 지역에 경쟁력 있는 후보를 심지 못했다. 이는 친이 실세들의 또 다른 파워게임의 결과라는 게 당내의 정설이다.

결국 향후 정국의 키는 한나라당 당내 화합 여부에 있다.

박 전 대표는 자신이 지원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친박연대의 ‘박근혜 마케팅’을 사실상 방조했다. 이에 대해 당인(黨人)으로서의 도리를 잊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럼에도 손을 내밀고 포용해야 하는 쪽은 여전히 대선과 총선의 승자인 이명박 대통령 쪽이라는 게 당 안팎의 얘기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탈당 출마 인사들의 ‘복당 불가’ 방침을 내놓고 있지만, 그렇게 일도양단(一刀兩斷)하는 것은 당의 앞날과 정국 안정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전 대표 세력이 일제히 등을 돌리고, 외부 세력과 연합해 ‘반이명박 연대’를 구축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이명박 정부의 몫이다. 국정개혁의 방향까지는 틀지 못해도 속도를 늦출 수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과 당내의 친이 실세들은 박 전 대표 세력을 딛고 당권을 완전히 거머쥐려는 ‘완승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이상득 이재오 정두언 의원 등 실세들을 관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읍참마속’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반대파를 설득해 함께 끌고 나가는 진정한 리더쉽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박제균 기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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