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미경]여성은 ‘비용’인가 ‘인재’인가

  • 입력 2008년 3월 28일 03시 02분


‘하이힐을 신고 사다리를 오르는 법’ ‘남자보다 많이 버는 여자들의 비밀 25’ ‘잘 풀리는 여자 스타일’ ‘부드럽게 협상하라’….

최근 발간된 여성관련 서적의 제목이다. 대부분 직장여성을 위한 성공전략서이다.

내용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직장여성의 최대 고민인 가정과 일을 어떻게 병행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정작 빠져 있다.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여성이 모두 싱글이거나 자녀가 없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물론 가정이나 자녀 얘기를 다룬 여성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 도서의 또 다른 한 축은 주부를 겨냥한 육아법과 살림법을 소개하는 책들이다.

그러나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여성의 관심사를 다룬 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전체 취업여성 중 기혼여성이 75%를 넘지만 이들의 고민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그들만의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4.8%에 달한다. 1990년대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남녀 임금격차는 거의 변화가 없다. 지난 10년 동안 여성이 받은 임금은 똑같은 일을 하는 남성의 60∼65% 수준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에 자녀가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임금이 적은 것은 임금과 승진에서의 성차별보다는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부담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미국은 선진7개국(G7) 중에서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그 이유를 조사한 미국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유럽에 비해 일하는 어머니를 지원하는 정책 개발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성부는 22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여성친화지수’ ‘여성친화인증마크’ 등 기업의 여성친화인증제도 도입을 맨 앞에 내세워 발표했다. 그러나 도입 기준이나 시기, 대상 기업 규모 등에 대한 액션플랜이 없어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성부 관계자는 “기업이 이런 제도에 어느 정도 호응해줄지 몰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최근 경기 과천시의 청사에서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으로 옮겨온 보건복지가족부의 여직원들은 자녀 맡길 곳을 찾느라 쩔쩔매고 있다. 가족·육아 주무부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사 과정에서 보육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여성 경영컨설턴트 펠리스 슈워츠는 “기업이 여성을 고용하면 남성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성은 출산, 휴직, 조기퇴직 등으로 업무가 중단될 가능성이 커 투자 대비 효과가 낮다는 것이다.

기업이 여성을 ‘비용’ 차원에서 생각하는 한 직장과 가정생활을 균형있게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제도는 그저 말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여성을 ‘인재’로 본다면 기업은 아무리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인재를 뽑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한 기업 임원은 “직원 책상에서 100만 원짜리 컴퓨터가 없어지면 조사를 하고 난리가 나지만 능력 있는 여직원이 자녀를 키우느라 회사를 그만두면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똑똑한 ‘알파걸’들이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이들이 비용으로 간주될지, 인재로 대접받을지 지켜볼 일이다.

정미경 교육생활부 차장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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