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뒤틀림의 정치

  • 입력 2008년 2월 28일 02시 55분


지금의 정치판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분명 정상이 아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사흘이 지났건만 새 내각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내각의 동거’라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에 자리를 잡았지만 사실상 막막할 것이다. 제도의 문제, 민주주의와 관련된 문제이기에 야당을 탓할 수도, “어째서 이런 일이…”라고 개탄할 수도 없다. 답답할 뿐이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양상은 전혀 다르지만 집권당인 자민당의 후쿠다 야스오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7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자민당과 공명당이 중의원의 3분의 2가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작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제1 야당인 민주당에 다수당의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 지난주 일본 경단련(經團連) 경제홍보센터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했다가 만난 아사히신문의 호시 히로시 편집위원은 이를 한마디로 ‘뒤틀림의 정치’라고 표현했다.

일본에서는 모든 법안과 예산안이 발효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을 차례로 통과해야 한다. 자민당 정부가 애써 개혁안을 마련해 중의원을 통과하더라도 참의원에서 제동을 걸면 휴지가 되고 만다. 참의원에서 부결된 안을 중의원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원이 재의결하면 다시 살려낼 수 있도록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정치적 쿠데타’를 감행하기란 쉽지 않다. 바로 민심 때문이다.

중의원은 2005년 9월 구성됐고 참의원은 7개월 전에 다시 구성됐으니 지금의 민심은 참의원의 다수당인 민주당 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인식이다. 그래서 자민당은 속은 아프지만 민심을 의식해 섣불리 재의결을 밀어붙일 수 없는 형편이다. 우리의 경우와는 대조적이다. 불과 2개월 전 대선에서 민심의 선택을 받은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4년 전의 민심에 따라 구성된 국회 다수당인 통합민주당에 휘둘리고 있는 상황이니.

후쿠다 정권은 이런 난국을 깨기 위해 적절한 시기를 택해 중의원을 해산하고 다시 선거를 치르는 극약 처방을 구상하고 있다. 과반 의석을 못 얻으면 정권을 잃을 수도 있고, 3분의 2 이상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 지금만도 못한 구도가 될 수 있는 도박이지만 그래도 민심의 심판을 받아보자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지금과 같은 사실상의 ‘식물정부’ 상황을 면할 길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뒤틀림의 정치는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고 그 해법도 각양각색이다. 미국 의회는 당론이 아닌, 의원 자유투표로 표결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많은 나라에서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1990년 3당 합당이나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大聯政) 제안도 그 해법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새로 국회를 구성할 4월 9일 총선까지 이제 40여 일 남았다. 과반 의석 확보로 지금의 뒤틀린 정치를 바로잡느냐 못 잡느냐는 전적으로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하기에 달렸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낙관보다는 비관이 앞선다. 장관 후보의 부실 인선은 거의 코미디 수준이고, 한나라당 공천은 줄 대기가 판치는 구태가 역력하다. 10년 만에 정권을 잡은 세력의 역량과 도덕성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