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푸에블로號와 뉴욕 필

  • 입력 2008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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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23일 동해상을 정찰 중이던 미국 해군 푸에블로 호가 원산항으로 나포됐다. 김신조 등 무장공비들의 청와대 습격기도 사건이 난 지 이틀 뒤였다. 그러니까 23일은 푸에블로 호 나포 4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푸에블로 호는 현재 평양의 대동강변에 ‘대미(對美) 전승 기념물’로 전시돼 있다. 142년 전인 1866년 개방을 요구하던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 호가 조선의 쇄국정책에 의해 격침된 바로 그곳이다. 북한의 ‘조선력사’는 ‘조선인민의 첫 반미투쟁인 제너럴 셔먼 호 사건은 김일성의 증조부인 김웅우가 앞장섰다’고 왜곡 기술하고 있다.

▷당시 린든 존슨 미 행정부는 즉각 극동 미 공군에 비상출격대기 명령을 내리고 핵(核)항모 엔터프라이즈를 원산 근해로 급파했다. 북-미는 다음 날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나포된 곳이 공해냐 영해냐를 놓고 설전을 벌였으나 결론을 못 냈다. 결국 양측의 비밀협상 끝에 북의 승리로 돌아갔다. 승무원 82명과 시신 1구를 돌려보내는 대신 영해 침범을 시인하는 각서와 사과를 받아 낸 것이다.

▷북한 주민에게 대미항전(對美抗戰) 의식을 고취하는 전시물로 쓰이는 푸에블로 호가 조만간 북핵문제 해결과 북-미 관계 발전을 위한 상징물이 될 조짐이다. 2002년 4월 방북 때 김계관 외무성 부상에게 배의 반환을 제안했던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는 23일 언론 인터뷰에서 이를 다시 촉구했다. 그는 “푸에블로 호를 돌려준다면 양국이 적대관계를 접고 새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상하원도 2005년 2월과 작년 1월 반환요구 결의안을 낸 바 있다.

▷북은 이미 뉴욕 필하모닉의 내달 26일 평양공연을 받아들인 마당이다. 때맞춰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작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따뜻한 기류가 쌍방향으로 흐르는 호기(好機)에 푸에블로 호 반환은 북-미 관계를 여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북으로서는 푸에블로 호를 반환함으로써 대미 관계를 개선하고 국제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쪽이 실용적 선택이 될 것이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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