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내내 헷갈려… 89년생은 입시 실험용”

  • 입력 2007년 12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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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땐 내신, 2학년땐 논술, 3학년땐 수능

《“12월 7일만 생각하면 진짜 가슴이 답답해진다. ㅠㅠ. 외국어 1등급 안 나오면 정말 죽고 싶을 거야. 내일 엄마랑 교회 가서 기도해야겠다. 하나님, 제발 연세대 붙게 해 주세요. ㅠㅠ.”

서울 K여고 3학년 이모(18) 양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통지일을 앞두고 일기장에 쓴 글의 일부다. 안타깝게도 그의 간절한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14일 발표된 연세대의 2학기 수시 일반우수자 전형의 합격자 명단에 이 양의 이름은 없었다. 그의 친구 김모(서울 S고 3학년) 양, 이모(서울 Y고 3학년) 군도 학교생활기록부(내신)와 수능, 논술 준비로 ‘죽음의 트라이앵글’ 속에서 보낸 고교생활 3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89년생이 죄인가요”=이처럼 오락가락하는 교육정책의 첫 적용대상이 된 현 고3 수험생들은 ‘저주받은 89년생’으로 불리기도 한다.

두 여학생은 논술학원에서 만난 친구다. 외국어에 재능이 있는 이 양은 정치외교학과나 영문학과, 김 양은 법학과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양은 “중학 3학년 때 교육 당국이 내신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해 그런 줄 알았는데 수능과 논술도 중요하다고 하면서 세 가지를 모두 잘해야 했다”며 “친구들 사이에 우리가 실험용 쥐냐는 불만이 많았다”고 말했다.

의대 지망생인 이 군은 공부 때문에 5년째 아버지와 ‘별거’하고 있다. 중학 2학년 때 자신과 형은 좋은 교육환경을 찾아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왔고 아버지는 직장이 있는 충남 천안시에 살고 있다.

이 군은 “3년 내내 입시정책을 놓고 교육인적자원부와 대학이 티격태격 싸우기만 했다”며 “부모님과 선생님은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했지만 발표가 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새 입시에 우왕좌왕 3년=이들이 중학 3학년이던 2004년 말 교육부는 2008학년도 대입부터 수능 내신 9등급제를 골자로 한 새 입시안을 발표했다.

김 양은 “수능 비중이 이렇게 클 줄 알았다면 중학 3학년 때 외국어고로 진학했다”며 “내신 비중이 커지고 외고에 대한 불이익이 클 것이란 소문에 외고 진학을 포기하고 인문계로 갔는데 순진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2005년 5월 7일에는 내신 등급제와 관련된 초유의 고교생 시위가 광화문 일대에서 벌어졌다.

이 양은 “그때 ‘고교생 죽이는 내신등급제 폐지하라. 광화문에 모여. 이 문자 받으면 20명에게 연락하라’는 친구의 메시지를 받았다”며 “나도 시위에 참가할까 했지만 부모님들이 학교를 찾아와 막는 바람에 참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5년 6월에는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들이 내신 변별력이 없다며 논술 반영 비율을 높이면서 또다시 ‘논술 열풍’이 불었다. 2007년은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놓고 교육부와 대학의 갈등이 계속됐고 수능 등급제의 부작용이 불거졌다.

이 군은 “수능과 내신은 완전히 다른 공부인데 내신을 강조했던 학교 선생님들도 정말 뭐가 중요한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라며 “2학년 때부터 학원에서 내신, 수능, 논술을 각각 준비하느라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뭘 보고 지원하나요”=이들은 “현재의 수능 등급제는 ‘깜깜이 제도’라고 할 정도로 입시 정보가 너무 없다”며 “1, 2점 차로 대학 수준과 인생 진로까지 바뀌는 현실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이 군은 수능에서 언어 수리‘가’ 외국어와 과학탐구 3과목이 모두 1등급이지만 물리Ⅰ이 3등급이어서 의대 진학이 어려운 형편이다. 수시에서 서울과 지방의 의대 7곳에 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이 군은 “내년엔 상위권 재수생이 많다는 얘기에 재수 결심도 쉽지 않다”며 “공대로 진로를 바꿀 생각인데 지방에서 고생하는 아버지께 면목이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군은 또 “등급제가 학생 실력을 대충 가른다고 하더니 사실은 더 가혹하게 9등급으로 나누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수시에서 낙방한 이들은 20일부터 시작되는 정시에서 또다시 대학을 선택해야 하지만 더욱 초조한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양은 “재수라도 하고 싶지만 부모님이 반대해 걱정이고 또다시 지옥의 1년을 보낼 자신이 없다”며 “후배들이라도 맘 놓고 공부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줄 수는 없느냐”고 반문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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