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수구 꼴통과의 한판

  • 입력 2007년 11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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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아름다운 건가, 가치가 아름다운 건가.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18주년에 맞춰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여론조사를 했다. 구동독에 살던 사람들의 대답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그래도 사회주의는 제대로만 했으면 참 좋은 아이디어였는데…. 특히 사회보장제도는!”

글로벌 변화 외면한 ‘좌파 보수’

평등과 사회적 연대만큼 가슴 벅차는 가치도 없다. 교육과 의료는 공짜이고 늙고 병들면 국가가 돌봐 주는 사회야말로 살아서 경험하는 천국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18년이 지났는데도 동독 출신들은 ‘사회주의가 모자라 사회주의를 망쳤다’는 미련과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모양이다.

마침 독일 경제가 살아나자 연립정부의 한 축인 사민당이 좌파 본색을 드러냈다. 노동과 복지비용을 줄인 덕에 간신히 늘어났던 일자리가 도로 줄든 말든, 분배정의를 위한 실업자 보조금 삭감 반대, 최저임금제 도입 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22일 총리 취임 2주년을 맞은 앙겔라 메르켈은 첫 동독 출신의 우파 총리다. 그가 “우린 사회주의를 실컷 해 봤다”고 말했듯이, 동독이 망한 건 사회주의가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전 국민의 생로병사를 국가가 책임지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사회주의로는 더는 부(富)를 창출할 수 없어 망했던 거다.

산업화시대 대량생산은 국가주도 계획경제로 이끌어 낼 수 있었지만 세계화시대 지식정보화 사회에선 안 통한다. 이젠 지식정보가 뛰어날수록 세계화의 열매를 더 많이 맛볼 수 있는 세상이다. 국민의 능력을 키우진 못할망정 평등하자고 끌어내려선 손가락 빨기 연대나 하기 십상이다. 운 좋게 유가가 폭등해 돈이 넘쳐나는 러시아나 베네수엘라만 빼놓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근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좌파라는 말을 큰 문제처럼 생각하는데 영국 노동당도, 독일 사민당도, 프랑스 사회당도 좌파인데 정권을 잡았다”며 10년간의 좌파 집권을 사실상 시인했다. 맞는 말이다. 영국 노동당은 물론 미국 민주당도 10여년 전 진작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라는 우파의 가치에 탈규제와 민영화, 자율과 경쟁 등 우파의 처방을 도입해 집권에 성공했다. 28년 전 시장경제로 돌아선 중국 공산당과 다름없는 변신이다. 시대를 알고 스스로 변화해 나라를 번영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진보 개혁세력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DJ는 “지금 실제론 좌파건 우파건 다 중도통합의 시대”라고 했지만 등잔 밑이 어두워도 이렇게 어두울 순 없다. 중도통합은커녕 사회주의가 모자라 양극화가 심화됐다며 개인이건, 학교건, 기업이건, 잘나가는 쪽의 발목을 붙잡는 수구 좌파가 참여정부다.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고 주장한 노무현 대통령의 ‘별놈의 보수론’이 맞는다면, 세계화로 약효 잃은 좌파 처방을 고집하는 참여정부야말로 보수 좌파가 아닐 수 없다.

참여정부의 소를 자처한 황태자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참여정부의 방향은 옳다”면서도 “국민께 상처와 부담을 느끼게 한데 대해 죄송하다”고 했다. 제대로만 하면 사회주의는 참 좋은 아이디어라는 동독 사람들 같은 소리다. 그래서 실력 있는 지식정보 노동자가 나오는 꼴을 못 보겠어서 9등급 대학입시로도 모자라 완전 폐지를 외친 건가.

진보 개혁, 함부로 붙이지 마라

학력 무시 로또 대입을 주장하는 정 후보나 국립대 공동학위제를 도입하겠다는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쯤 되면 세계 어느 수구 꼴통 좌파에도 꿀리지 않는다. 대학평준화 주창자인 원조 좌파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말할 것도 없다. 천사 같은 언사로 국민을 바보로 만들어선 잘난 그들과 부모 잘 만난 그들 자식들만 권력의 단맛을 누리려는 건지 의심스럽다.

무능하고 무식한 보수 수구 꼴통 좌파 정부에 10년간 바친 세금이야 수업료로 쳐줄 수 있다. 그러나 자기만의 만족을 위해 남의 자식 발목까지 부러뜨리는 세력을 진보 개혁이랄 순 없다. 여기다 ‘민주’까지 덧붙이면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이다.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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