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각 시대]마음까지 적시는 커피향의 전율

  • 입력 2007년 11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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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 안내.’

들어가기 전부터 엉덩이가 뜨거워진다. ‘제너럴 닥터’라는 문패 옆에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라는 내용의 A4 용지가 놓여 있다. 주사 맞는 곳이 아니랄까봐 입구부터 병원 티를 낸다. 하지만 문을 열었더니 소독약 냄새 대신 진한 커피향이 코를 자극한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접수창구도 보이지 않았다. 목에 청진기를 두른 한 남자가 커피 잔을 휘휘 저으며 환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전 커피도 만들고 진찰도 하는 사람이니까요.”

병원장이자 카페 주인인 김승범(31) 씨다. 이곳의 공감각을 만든 주인공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 앞에 있는 ‘제너럴 닥터’는 병원 카페다. 올 5월 6, 7개의 테이블이 있는 카페와 내과 및 소아과 진료를 하는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진료를 기다리며 홀로 커피를 마시는 직장인, ‘꺄르르’ 수다를 떠는 여대생들, 전공 서적과 씨름하는 대학원생 등 50평 남짓한 공간 속 얼굴은 각기 다르다.

○느림…귓가를 간지럽히는 재즈 가수의 끈적한 목소리

‘제너럴 닥터’는 느리다. 창밖으로 보이는 노란 은행나무는 움직임 없이 그림처럼 서 있다. 은행나무와 백열등이 병원을 노랗게 수놓고 있는 동안 텁텁한 재즈 선율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낡은 오디오를 통해 들리는 듯한 이 소리는 소위 ‘빈티지’ 스피커와 앰프에서 나온다. 평소 느릿하고 따뜻한 느낌을 좋아하는 김 씨가 직접 사들인 것들이다. 여성 재즈 가수 노라 존스의 목소리가 더 느리고 끈적하게 들리는 건 이 때문이다. 진료 역시 느릿하다. 20∼30분에서 길게는 2시간까지 환자를 돌본다는 그의 진료 방식은 10대부터 60대까지 환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감기에 걸렸을 때마다 온다”는 한 여성은 “다른 병원에서 느끼지 못한 편안함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체온…인간적 체취가 묻어 나는 테이블과 전시공간

병원을 만든 취지가 궁금했다. 김 씨는 “인간적인 병원을 만들어 보려고…”라고 말했다. 병원을 아프기 전부터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인간적인 병원을 위해 흰 의사가운을 과감히 벗어 던지기도 했다. 개원하기 전 2개월 동안 ‘바리스타’ 과정을 밟았다. 커피향 나는 병원이 테이블과 의자만으로 이뤄진 무생물은 아니었다. 전시회도 열린다. 요즘 애니메이션 작가 3명의 만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키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체취가 묻어나는 전시회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면 병원 안이 나무로 채워져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나뭇결이 다 드러난 테이블에 앉으니 손끝으로 나무의 감촉이 전해졌다. 옆에 앉은 환자가 8절지 크기의 옛 종이를 타자기에 끼워 타닥타닥 자판을 두들긴다. 시간이 갈수록 진료실 벽에 걸린 ‘의사면허증’이 가물가물해진다. 커피향에 취한다. ‘원더걸스’의 히트곡 ‘텔 미’의 선율도 잊을 정도로…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


▲ 촬영: 박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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