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치명적 사랑’에 빠졌군요

  • 입력 2007년 11월 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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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 해치는 ‘일중독증’ 관리 요령

회사원 정상원(38·서울 용산구 이촌동) 씨는 주말에도 별로 쉴 생각이 없다.

“놀이동산에 가자”는 가족의 제안도 “피곤하다”면서 피하기 일쑤다. 남겨 두고 온 회사일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아 오후쯤 회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직장인들의 업무 강도는 높아진다. 물불 가리지 않고 일에 몰입하는 ‘일중독증’ 환자가 많이 늘어나는 것도 이때쯤이다.

정신의학계에서는 보통 1주일에 60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을 ‘일중독자’로 분류한다. 그러나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모두 일중독자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일중독자’와 ‘열심히 일하는 건강한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을 ‘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미룰 수 있는가’로 본다. 일중독자는 아무리 일이 많아도 끝내야 직성이 풀린다. 끝내지 못하면 집으로 가져가거나 주말이라도 회사에 출근한다.

일중독증은 경제력에 대해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 완벽을 추구하거나 성취지향적인 사람,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사람, 배우자로부터 도피하려는 성향이 강한 사람에게 잘 나타난다.

일중독자는 보통 3단계 과정을 거친다. 1기 때에는 집에 와서도 일을 한다. 2기가 되면 일중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일부러 여가를 즐기고 취미활동에 매달린다. 그러다가 3기가 되면 취미생활을 포기하고 어떤 일이든 환영하며 건강이 무너질 때까지 일에 매달린다.

○ 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하라

일중독증 자가진단
문항내용
1퇴근 후에도 업무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다
2일이 너무 많아 휴가를 낸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3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아침에는 일찍 일어난다
4아무 일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면 불안하다
5남이 나를 경쟁의식이 강하고 일에 승부를 건다고 생각한다
6주말이나 휴일에도 일을 해야 마음이 편하다
7언제 어디서나 일할 자세와 준비가 돼 있다
8식사 때는 옆에 서류나 일감을 놓고 보면서 시간을절약하려고 한다
9매일 할 일을 빽빽하게 목록을 작성해 놓는다
10일하는 것을 즐기고 일 외의 다른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10개 중 8개 이상에 해당되면 일중독증이 의심된다.

다른 중독증과 달리 일중독증은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일 잘하는 사람’ ‘성실한 사람’ ‘능력이 뛰어난 사람’ 등으로 칭찬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신체적 피해가 무시되기 쉽다.

일중독증 환자들은 일이 없거나 줄어들면 불안 초조해지는 일종의 금단현상을 보인다. 특히 일중독자의 퇴직이나 은퇴는 건강의 악화와 같은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우선 자신이 일중독증 환자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일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 매일 5분 이상 명상의 시간을 갖고 6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며 1년에 1주일 이상 일에서 벗어나 휴식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오늘 할 수 있는 일’ 위주로 업무 스케줄을 재조정한다. 일과표를 만들어 업무를 순차적으로 수행하고, 불필요한 업무는 과감히 중단한다.

일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유형의 일중독자는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은 거절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자신감의 상실과 우유부단함이 일중독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 일중독증 상사와 터놓고 얘기하라

직장인들은 “일중독증이 있는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호소한다.

상사를 따라 장시간 근무하게 되고, 비현실적인 업무 기한에 맞추려고 시달려야 하며, 하나의 업무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다른 업무가 부과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여유가 없다.

이때 스트레스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한다면 상사와 부하 직원 간의 관계가 서먹해지고 일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 해결의 첫 단계는 감정을 배출할 수 있도록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토로하지 않고 속에 오래 묵혀 두면 나중에 갑자기 폭발적으로 감정이 터져 나와 스스로 수습하기 힘든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가슴속 응어리를 가족 또는 믿을 수 있는 직장 내 동료들과 나누는 것이 좋다.

일중독증 상사와도 대화를 나눠야 한다. 직선적인 언급이나 비판은 하지 않더라도 과도한 업무로 인한 어려움을 솔직히 얘기하고 상사의 처지와 관점도 이해하면서 해결점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메모를 하거나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갖는 것도 좋다. 그 속에 자신의 모든 감정을 쏟아 붓는다. 대신 나중에 다시 읽는 것은 좋지 않다. 부정적인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번 정도 어떤 일도 하지 않는 평온하고 고요한 상태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도록 한다.

(도움말=서국희 한강성심병원 정신과 교수, 윤형렬 산재의료관리원 창원병원 건강관리센터 소장, 윤세창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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