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국민 4명 생명 구할 5억 원이 없다?

  • 입력 2007년 10월 30일 20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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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170일째다. 한국인 선원 4명이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에게 납치돼 반년 가까이 억류돼 있다.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이고 가정에서는 가장이자 아버지요 남편이다. 그런 이들이 외국인 해적에게 두들겨 맞아 고막이 터지고 겁에 질려 헛소리까지 하는 극한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모습이 말이 아니다. 말라리아도 그들의 몸을 갉아먹고 있다. 선장 한석호 씨는 몸무게가 20kg 넘게 빠졌다.

미움보다 무서운 무관심

지난 반년 동안 피랍의 고통은 선원과 가족들만의 몫이었다. 국가와 대다수 국민에게 잊혀진 채 눈물만 흘렸다. 두 달 늦게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납치사건 전말은 그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대통령이 관심을 표명하더니 국가정보원장이 현지로 달려가 기어이 44일 만에 피랍자들을 데리고 귀국했다. 그들 눈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23명은 격이 다른 국민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피랍된 선원과 가족을 낙담시킨 것은 미움보다 무서운 무관심이다. 선원 피랍에는 종교도 개입되지 않았고 국군 파병도 관련되지 않았다. 국가적 관심사가 되기에는 관련된 인물이 너무 적다. 그렇다 해도 생사가 걸린 문제를 아프리카 오지에서 새우 잡던 4명의 국민에게 닥친 개인적 불행으로 축소해 보는 듯한 정부가 야속한 것이다.

하긴 무관심으로 인한 비극이 한국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아프리카 수단의 다르푸르에서는 지금도 학살극이 자행되고 있다. 저마다 인권(人權)을 지고(至高)의 가치로 외치는 21세기에 ‘홀로코스트(holocaust)’ 또는 ‘제노사이드(genocide)’라 불리는 대학살 범죄가 이어진다. 미얀마에서는 민주화 시위에 나선 국민에게 총탄을 퍼부은 군부가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르푸르에서 죽어간 20만 명의 수단인과 억압받는 미얀마 국민 하나하나가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똑같은 인간이다. 한쪽에선 인권 존중의 목소리가 드높은데 다른 쪽에서는 살육의 총소리가 요란하다.

다르푸르 학살을 종식시킬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중국이 움직이면 된다. 중국은 수단이 생산하는 원유의 3분의 2를 수입하고 매년 3억5000만 달러를 투자한다. 중국은 미얀마의 최대 무기 공급국이자 최대 무역 파트너다. 정권의 버팀목인 중국이 강한 목소리를 내면 수단 정권도, 미얀마 정권도 어려워진다. 방법이 뻔한데도 국제사회는 중국을 움직이지 못하고 학살극을 지켜보고만 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에서는 국민이 나섰다. 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해상노련)이 중심이 돼 ‘국민차별반대 소말리아 피랍선원을 위한 시민모임’(www.gobada.co.kr)을 만들어 몸값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30일 현재 2억여 원이 모였고 기독교 단체와 교회 대학 등에서도 3억 원이 넘는 성금을 선원 가족들에게 전했다. 아름다운 참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금이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안대선 해상노련 본부장의 말대로 조금만 더 힘을 보태면 해적들이 요구하는 몸값을 국민의 힘으로 마련할 수 있다.

피랍 선원을 살리는 국민

현지에서 석방 협상을 벌이고 있는 마부노호 선주 안현수 씨에 따르면 해적들은 석방 대가로 111만 달러(약 10억 원)를 제시했다. 5억 원만 더 모으면 국민 4명을 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케냐에서 석방 협상을 벌이던 안 씨는 27일 두바이로 장소를 옮겼다. 안 씨는 “26일 해적들에게 합의서를 보냈다”며 “해적들이 요구하는 돈을 건네면 선원들이 풀려날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크게 한 일이 없다. 국민의 힘으로 10억 원이 마련되면 돈과 선원을 교환하는 일이라도 책임지고 해내길 당부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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