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특집]현장에서/눈앞에서도 예측 못한 위기 경고 시스템

  • 입력 2007년 8월 2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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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여파로 한국 증시가 폭락한 17일. 금융감독 당국 고위 관계자인 A 씨는 본보 기자를 만나 다소 충격적인 말을 했다.

“서브프라임 충격이 국내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이 없으니 주가가 폭락한 지금이 투자에 나설 때라는 얘기가 나온다죠?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닙니다. 위기상황이에요.”

의외였다. 정부 당국자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며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마당에 위기를 강조하다니….

그의 논리는 이렇다.

우선 미국 금융시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자산을 담보로 자산담보부채권(CDO)을 만들고, 이 CDO를 담보로 파생금융상품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금융상품을 토대로 다른 금융상품을 만드는 연쇄 구조 때문에 부실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른바 ‘불확실성의 리스크’다.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진 분석이다.

더 큰 문제는 금융회사들이 CDO 판매액으로 각국의 주식과 채권 등 증권에 투자해뒀는데 금융 리스크가 커지면 증권을 처분해 유동성을 확보하려 한다는 것. 이때 금융회사들은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보다는 신흥시장의 주식을 먼저 팔려 하는데, 우선 매각의 대상에는 한국 주식도 포함된다는 분석이다.

A 씨는 이런 우려가 이미 가시화됐다고 했다. 최근 몇 개월간 외국인 순매도가 늘어날 때 감독 당국과 증시 전문가들은 ‘차익 실현’이라며 안이한 해석만 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외국인은 위기상황을 대비해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셀(Sell) 코리아’를 한 것이었다. A 씨는 “그때 외국인 매도가 차익실현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는 점을 지금에서야 알았다”며 실수를 자인했다.

그만큼 한국 금융시장의 위기경고 시스템이 후진적이란 의미다.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리스크관리체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했다고 했지만 정작 눈앞에 닥쳐온 위기의 실상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셈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한국 증시가 미국발(發) 위기에 너무 민감하게 반등한다며 ‘냄비 증시’에 비유하곤 한다.

A 씨의 자성을 들어보면 ‘증시의 변동성이 커진 원인이 과연 냄비 근성에만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투자자가 악재에 민감한 건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홍수용 경제부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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