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앉은뱅이 된다는 데 수술 안 받을 수 있어?”

  • 입력 2007년 7월 5일 14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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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 수술 장면. 해당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습니다.
척추 수술 장면. 해당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습니다.
한 척추전문의의 양심고백 “척추수술 급증은 의사들 협박·공갈 때문”

“최근 척추수술이 급증한 건 의사들의 공갈·협박 때문입니다. 전문의들이 환자에게 ‘허리 신경을 다쳤는데,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마비되거나 앉은뱅이가 된다’고 엄포를 놓으면 어느 환자가 수술을 받지 않겠습니까.”

서울 소재 A대학병원 척추전문의 K교수의 설명이다.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난 척추수술 건수는 의사들의 공갈·협박에 못 이겨 환자들이 겁을 먹고 수술을 받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최근 4~5년 사이 우리나라의 척추수술 건수는 폭증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센터가 2002년 1월~2005년 9월까지 요양급여 명목상 척추수술 입원 건수 22만5229건을 분석한 결과, 수술은 해마다 두 자릿수의 증가세를 보였다. 2002년 4만1593건에서 2004년 6만6933건으로 불과 2년 사이 61%나 증가했다. 2005년은 9월까지만 6만239건이나 된다.

같은 기간 척추수술병원도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2002년 1월 전국에 33곳뿐이던 척추수술병원은 2005년 9월 177곳으로 5배나 급증했다. 척추센터를 설치한 종합병원도 75곳에서 169곳으로 증가했다.

“받지 않아도 될 수술이 너무 많다”

4일 병원 근처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K교수는 ‘척추수술 남용 실태’를 묻는 기자에게 “말하기가 참 어렵다”며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관련 의사들이 장사 방해하려고 작정했냐고 따질 테고, ‘괜찮다’고 하면 학문적으로도 모순일 뿐더러 학자의 양심이 허락치를 않고…”라며 고뇌의 일단을 보였다.

그러나 어렵게 입을 땐 K교수는 현재 병원에서 자행되고 있는 ‘공포마케팅’의 실상에 대해 충격적인 얘기들을 털어놨다.

K교수는 우선 “우리나라는 국민 10만 명당 척추수술을 받는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받지 않아도 되는 수술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며 척추수술 실태부터 해부했다.

“척추질환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허리나 다리가 아픈 증상입니다. 여러 가지 질환이 있지만 일반인이 수술을 받는 병은 척추 디스크와 신경관이 좁아지는 협착증뿐입니다. 이 두 가지도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는 채 5%도 안 됩니다. 환자 100명당 5명꼴이죠. 그런데 실상은 50명 이상이 받고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5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160명이 척추수술을 받았다. 10만 명당 수술 비율이 23명인 일본에 비해 무려 7배나 많다. 수술 건수 증가폭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인구 10만 명당 수술 건수는 2002년과 비교해 2004년에 59.5%나 증가했다. 불과 2년 사이의 증가율이 미국의 10년 증가율(35.3%)보다 높았다.

“척추수술 남용은 가이드라인 부재와 의사들의 공갈협박 때문”

K교수는 척추수술 남용이 일어나는 이유는 수술에 대한 확실한 가이드라인 부재와 척추전문의들의 공갈·협박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의료계 내의 지침을 보면 ‘척추수술은 아주 심하게 아프거나 마비 증상이 있는 경우, 6주 이상 치료 후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경우에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애매모호한 내용 투성이죠. 의사들이 환자에게 수술을 강권하기 쉽게 돼 있다는 말입니다. 이 때문에 의사들 사이에서는 척추질환이 돈 벌기 쉬운 질환으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의사들의 공갈·협박”이라고 목청을 돋웠다.

“의사들이 환자에게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마비 증상이 나타나거나 앉은뱅이가 된다’고 하면 어느 환자가 수술을 받지 않겠습니까. 환자들이 지레 겁먹고 수술을 하는 겁니다. 뼈가 부러지거나 염증이 생겨 항생제를 먹어도 치유가 안 될 경우, 또 휘어지거나 구부러진 척추를 바로 잡을 경우에는 당연히 수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디스크·협착증은 수술 안 해도 대부분 다 나아요. 약 먹고 쉬면 증상이 호전됩니다. 그걸로 인해 죽거나 앉은뱅이가 되지도 않습니다.”

K교수는 “의사들도 학교에서 배울 때는 다 공감하는 내용인데, 필드에 나가면 그런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 외과의사는 수술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술 강권’으로 인한 폐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60대 후반 L씨는 며칠 전 서울의 한 정형외과에서 척추수술을 받았다. 담당 의사가 “신경만 넓혀주면 되는 간단한 수술로 불구가 되는 것도 막고 새 인생도 살 수 있다”며 수술을 권했기 때문. 그런데 L씨는 마취가 깨자마자 영문도 모른 채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후 한 달이 지나도 호전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L씨는 다른 병원을 찾았다. 여기서 “수술을 안 해도 시간이 좀 지나면 낫는 병인데 오히려 수술 때문에 상태가 더 악화됐다”는 말을 들었다. 현재 L씨는 한쪽 다리를 절고 있다.

L씨와 비슷한 피해 사례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척추수술 관련 피해구제 건수는 2000년 15건, 2001년 32건, 2002년 50건, 2003년 59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비싸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검증 안 된 ‘신기술’ 판친다”

K교수의 비판은 현 정부의 의료보험 제도로 이어졌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인정비급여’(보험공단의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아 환자가 치료비 전액을 부담하는 항목)라는 묘한 제도가 있다”며 의료보험 체계의 허점을 지적했다.

“외국에서 굉장히 좋은 기계를 국내에 들여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신기술’로 쓰겠다고 신고를 합니다. 심평원에서 급여 여부를 심사하는 동안 신기술은 ‘인정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됩니다. 요즘 쉽게 접할 수 있는 ‘5분 만에’ ‘째지 않고’ ‘흉터 없이’ 수술한다는 점을 부각한 ‘신기술’들이 다 여기에 해당됩니다. 급여 항목은 합리적인 금액을 산정해놨기 때문에 정해진 금액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정비급여’는 그런 기준이 없어요. 의사들이 받고 싶은 대로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300만원 받고 싶다면 그렇게 받으면 됩니다. 우리나라 병원에서 ‘신기술’이 판치는 이유죠.”

그는 의사들이 자의적으로 비용을 산정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폐해는 ‘신기술’이 전혀 검증이 안 됐다는 데 있다고 강변했다.

“현재 병원에서 자랑하는 ‘신기술’ 중 학문적으로 검증된 것은 많지 않습니다. 정부는 검증도 안 된 것들을 ‘신기술’이라는 미명 하에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해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마음대로 돈을 받게끔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굉장히 심각하고 위험합니다.”

K교수는 “이런 폐단은 척추수술 분야에서 제일 많다”며 “척추수술 병원이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척추수술은 보험 적용을 받습니다. 정부에서 마진율을 정해놨기 때문에 제도권 내의 항목에 따라 수술하면 절대 돈을 못 벌어요. 의사생활 5년, 10년 해서 빌딩을 살 수도 지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척추 관련 수술에는 ‘세는 구멍’이 많습니다. 돈 벌이가 쏠쏠할 수밖에 없고, 척수수술 병원 또한 넘쳐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신기술 면에서 낙후되지 말라고 ‘인정비급여’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 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며 “일본이나 대만의 경우 이런 문제점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을 자국 내에 들여오는 걸 금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사에게 속지 말고 수술 전 여려 병원을 들려라”

K교수는 끝으로 “디스크·협착증은 절대 위험을 초래하는 질환이 아니다”며 환자들의 주의를 환기했다.

“수술이 필요한 척추 환자는 정말 소수에 불과합니다. 수술을 하더라도 다른 외과 수술처럼 깨끗하게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척추 치료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수술하기 전 여러 병원을 찾아 두루 의견을 들어보는 게 좋습니다. 절대 의사들의 공갈·협박에 못 이겨 억울하게 수술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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