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에서 조화로… 베니스의 ‘조용한 도발’

  • 입력 2007년 6월 1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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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개막한 베니스 비엔날레(52회)가 ‘조용한 도발’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동안 실험작들의 ‘난장’이 펼쳐졌던 무대로 전위적이고 충격적인 시도를 우대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실험과 정통의 조화’로, 머리의 아이디어와 손에 밴 감성의 화해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개념 미술의 질주에 대한 ‘숨 고르기’이자 “이 자체가 소리 없는 도발이 아니겠느냐”는 평도 나온다.》

○ 세대 아우르는 미술가치 일깨워

아르세날레의 본(本)전시와 자르디니의 국가관 등에 77개국 28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베니스 비엔날레는 11월 21일까지 열린다. 한국은 본전시 참여 없이, 이형구 씨가 한국관 작가로만 참여했다.

미국인 출신으론 최초의 총감독 로버트 스토가 내세운 주제는 ‘감성으로 생각하기, 정신으로 느끼기’. ‘감성과 정신의 화해’라는 주제는 그가 직접 구성한 ‘이탈리아관’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40여 명의 작가를 선보이면서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대가와 중견 작가를 대비시켜 세대를 아우르는 미술의 가치를 일깨우려고 했다. 비엔날레에서 홀대받았던 로버트 라이먼 등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작품이 이채를 띠기도 했으나, 검증된 작가 위주로 전시를 구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본전시에서 ‘정통’ 사진 작품이 많은 점도 도드라진 특징 중 하나. 50여 명의 참여작가 중 사진을 내놓은 이는 20여 명. 미술의 주류로 부상한 사진에서 파격적 실험이 진행되고 있지만, 베니스에서는 흔들림 없는 기록이나 고발 등 사진의 본령을 강조하는 작품이 많았다. 프랑스 작가 이토 바라다의 ‘퍼블릭 파크’나 얀 흐리스티안 브라운(네덜란드)의 ‘뉴욕 앤드 디 어더 월드’ 등은 ‘평범해서 더 특별하다’는 인상을 준다.

개념 미술에 밀렸던 ‘손의 가치’를 다시 들여다보는 작품도 주목받았다. 가나의 엘 아나추이는 병뚜껑과 철사로 만든 거대한 장막 ‘두사사 2’로, 이탈리아의 안젤로 필로메노는 회화 같은 대형 자수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다. 미국의 킴 존스는 전시 벽면에 세밀하고 촘촘히 선을 그려 냈다.

올해는 ‘몸의 해체’를 시도한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시각적 충격을 안긴다는 평을 들었다. 황금사자상 후보로 언급되는 독일의 이자 겐스켄은 ‘오일’을 통해 숨이 막 멎는 순간의 표정, 칼을 든 채 목이 찢어진 사람의 단말마를 표현해 “파워가 넘친다”는 평을 받았다.

○ “몸의 해체 시도한 작품들 충격적”

트레이시 에민(영국)은 ‘바로드 라이트(Borrowed light)’라는 제목으로 하체를 심하게 비튼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내 여성적인 측면인데, 예쁘기도 하지만 하드코어 같다”고 설명했다. 몸에서 성적인 매력과 아름다움을 전면 제거한 이레나 유초바(슬로바키아)의 인공피부 연작, 발가락의 수술 장면을 보여 준 토머 가니허(이스라엘)의 ‘호스피털 파티’도 유사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

비엔날레 특유의 정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도 여럿 나왔다. 프란시스 알리스(벨기에)의 비디오 ‘리허설의 정치학’에서는 피아노와 성악 공연무대에서 전라의 여성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역사는 되풀이되고 간혹 길을 잃는다”는 메시지 등이 나온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축구를 하는 파올로 카네바리(이탈리아)의 영상 등도 반전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

인터랙티브를 시도한 작품은 ‘놀이마당’이 되기도 했다. 스웨덴의 야코브 달그렌은 900여 개의 다트판을 벽에 붙여 놓고 관객에게 다트를 던지게 했다. 그는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과 유사하며 액션의 주체가 작가에서 관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중국 차오페이의 ‘에브리 미러클스’는 대형 천막 안에서 관객들이 직접 ‘세컨드 라이프’(가상현실)를 즐길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 정치-사회적 메시지는 여전

‘체크리스트 르완다 팝’은 40여 명의 작가를 통해 아프리카 현대 미술을 한눈에 보여 주는 특별전으로 주목된다. 신디카 도코로 재단의 컬렉션전인데 왜곡된 여성의 몸을 보여 주는 영상(미네트 배리·에일리언) 등으로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고정 관념을 무너뜨린다.

베네치아=허엽 기자 heo@donga.com

▼ 볼만한 장외 전시▼

빌 비올라 ‘해변 없는 바다’, 이우환 ‘조응’ 시리즈 눈길

비엔날레 기간 중 베네치아 곳곳에서 ‘장외 전시’도 활발하게 열린다.

이 중 가장 주목받은 장외 작품은 백남준 이후 최고의 비디오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빌 비올라의 ‘해변 없는 바다’. 7일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조그만 가족성당 내 3개의 벽면에 설치한 대형 영상물로, 세차게 흘러내리는 물의 장막을 서서히 뚫고 나왔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을 담았다. 물의 장막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벽처럼 보이면서 그것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1000가지’ 침묵과 표정이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처럼 뇌리에 각인된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이 기획했으며 한국의 국제갤러리가 해외 화랑과 수억 원의 제작비를 공동 투자했다.

유럽과 일본에서 인정받는 이우환 씨도 8일 개인전을 열어 설치조각과 ‘조응’ 시리즈를 선보였다. 베네치아 트론체토에서는 제1회 코르니체 아트페어가 10일까지 열렸다. 이 아트페어에는 50여 개 화랑에서 작가 150여 명이 출품했으며 한국의 백송화랑이 고진규 씨 등 3명의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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