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新천재론]<3>국제수학올림피아드 금상 이석형군

  • 입력 2007년 4월 16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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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 대표로 참가해 개인 부문에서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은 ‘수학 천재’ 이석형 군. 변영욱 기자
지난해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 대표로 참가해 개인 부문에서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은 ‘수학 천재’ 이석형 군. 변영욱 기자
“공부 안 할 때요? 친구들과 탁구나 농구를 하기도 하고 PC방에 가서 게임도 하고 그래요.” 방과 후 학교 강의실에서 만난 아이의 첫인상은 또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컴퓨터 게임이나 운동처럼 그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공부 때문에 잠이 부족하고, 진로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 굳이 다른 면을 찾자면 매우 낙천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점이다. 국내외 수학계가 인정한 수학영재 이석형(16·서울과학고 2년) 군. 이 군은 지난해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개인 부문에서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는 우리나라 역대 출전 선수 중 최고 점수. 이 군은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국내 수학경시대회에서 줄곧 최상위권이었다. 이 군은 대한수학회의 ‘특별관리’ 대상이다.

이 군은 사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전형적인 영재다. 두 살 때 한글을 깨치고 놀이처럼 수학을 배웠다. 하지만 영재가 모두 천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NQ(Network Quotient·공존지수)’의 함정에 걸려 ‘주변과의 불화’ ‘또래 집단 내에서의 소외’ 등으로 성장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범재’, 심지어 ‘둔재’로 퇴화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 군의 천재성이 주변과 어우러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에는 부모의 부단한 숨은 노력과 가슴앓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일 거예요. 석형이가 책을 많이 읽다 보니 또래 아이들이 잘 모르는 어려운 어휘를 쓴 일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석형이를 조금 어렵게 생각한 친구들이 있었나 봐요.” 어머니 이은주(44) 씨의 회고다.

그때부터 이 군 부모는 공부보다는 또래 친구들과의 어울림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렇다고 아이의 재능을 마냥 썩힐 수도 없었다. 이 군 부모의 고육책은 학교에서 쓰는 말과 집에서 쓰는 말을 구분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과학용어는 집에서만 쓰도록 했다. 물론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은 부부의 몫이었다.

아이들과 어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혼자서는 블록 장난감으로 복잡한 기계를 만들며 놀다가도 친구들이 찾아오면 총을 만들며 놀도록 했다. ‘평범함 속에서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즐겁게 하도록 만들어 주자’는 게 이 씨와 남편 이상룡(44) 씨 부부의 지론이었다.

이 씨 부부는 지금도 이 군이 ‘똑똑하다’ ‘천재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고개를 젓는다. 조금만 재능을 보여도 자식 자랑에 앞장서는 요즘 부모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이 씨 부부는 “석형이는 단지 수학을 잘하는 ‘평범한 아이’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만 아이의 결정을 존중하고 열린 마음으로 고민을 들어주려고 노력했을 뿐이라는 것. 만일 수학영재로 만들겠다고 방향을 정해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했다면 아마도 수학에 관심을 끊었을 것이라는 게 이 씨 부부의 생각이다.

이 같은 부모의 배려와 노력은 평소 이 군의 생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 군은 평소 친구 사이에서 ‘책임감 강하고 성실한 아이’로 통한다. 그는 시험을 치는 날이면 컴퓨터 사인펜을 깜빡 잊고 안 가져온 친구를 위해 예닐곱 개씩 여분을 가져가곤 한다. 학교 수학서클인 ‘CalGen(칼젠)’의 장을 맡아 친구, 후배들과 수학공부도 함께 한다.

“어릴 때부터 더불어 잘사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부모님께서 강조하셨어요.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대해서는 안 된다고도 배웠고요. 그래서 남에게 화를 잘 못 내요.”

1학년 때 담임이었던 이승우 교사는 “남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배려하도록 어렸을 때부터 길러온 습성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 군이 수학에 대한 재능을 발현하게 된 과정에도 아들의 행복한 삶을 우선시하는 부모의 교육철학이 담겨 있다.

이 군이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인 것은 아니다. 어머니 이 씨는 “어릴 때 유달리 책을 좋아해 사 달라고 하는 대로 사 줬을 뿐 흔한 학원 한번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군이 아기일 때부터 책을 즐겨 읽어 줬다고 한다. 한글을 깨친 후 이야기책에서 동물백과사전까지 다양한 책을 섭렵했다. 이 군이 관심을 가지면 좀 더 어려운 책을, 집중력이 떨어지면 다른 분야의 책을 권했다. 그러나 책 선택은 전적으로 이 군에게 맡겼다.

이 군은 6, 7세 되던 무렵 수학 퍼즐책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이 무렵에는 이미 블록, 도형퍼즐, 지능게임, 기초적인 수학책은 다 접해 본 상태였다. 멘사 퍼즐 등 난도가 높은 책을 권하자 점점 흥미를 더 갖게 됐다. 다른 아이들이 학원으로 몰려갈 시간 그는 집에서 책과 퍼즐을 갖고 마음껏 놀았다. 아버지 이 씨도 퇴근 후 아들과 함께 퍼즐책을 펴놓고 문제를 푸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책이 그랬듯 퍼즐은 이 군에게 공부가 아닌 놀이였다. 책에서 원하는 퍼즐을 골라 여유를 갖고 풀었다. 그가 일반적인 영재들과 다른 점은 풀리지 않는 문제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풀리지 않으면 딴 일을 하다 영감이 떠오르면 재도전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부부는 아들에게 퍼즐놀이 외에 더 깊은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도록 ‘강요’했다.

어머니 이 씨는 “형제가 없는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외골수 기질을 갖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을 썼다”며 “유치원 때부터 되도록 많은 사람과 사귀도록 환경을 만들어 줬다”고 말한다.

이 군이 수학 분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우연한 기회에 대학 개설 영재프로그램을 다니면서부터였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또래들을 만나면서 수학올림피아드,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필즈상 같은 흥미로운 정보를 얻었다. 갑갑했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이 군도 “특별히 뭘 배워서 좋았다기보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기뻤다”고 말한다.

이 군은 고교 과정도 1년 빨리 마치고 국내외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다. 하루 빨리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다. 이번에도 이 씨 부부는 ‘아들의 선택’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 이석형군 적성진로진단 결과는

이석형 군에 대한 MI 적성진로진단 검사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본보가 이미 보도(14일자 A 4·5면)했던 수영의 박태환이나 발레의 박세은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두 사람의 경우 신체운동과 공간적성 점수가 매우 높았던 반면 이 군은 8개의 적성 영역 중 논리수학, 언어, 음악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논리수학 적성이 가장 높았고, 논리수학 적성을 결정하는 능력, 성취, 흥미 가운데 성취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왔다. 이는 꾸준한 노력으로 이 분야의 잠재 능력이 비교적 잘 발굴됐다는 얘기다.

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 교수는 “신체와 공간 점수가 높게 나온 스포츠 영재들과 정반대의 결과”라며 “전형적으로 수학적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특성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또 이 군이 논리수학에 못지않은 음악 지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 데 대해 “수학지능이 높은 영재들에게서 높은 음악 지능이 발견되곤 한다”며 “실제로 두 지능 사이에 연관성이 깊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고 말했다.

또 높은 언어능력이 재능 발휘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뛰어난 언어능력을 지닌 덕분에 같은 또래보다 더 높은 습득력과 이해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보통 영재들은 ‘또래로부터의 소외’라는 성장통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 군은 뛰어난 언어능력으로 대인관계도 원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자기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은 ‘보통’으로 나왔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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